Monthly Performance
월례움직임
레터프로젝트
레터 프로젝트는 한 달에 한번, 한 명의 작가가 그의 안부와 소식을 글로써 전하는 형식입니다. 이 프로젝트는 어느 때보다 서로의 안부를 묻고, 잘 지내는 것, 그리고 어떻게 이 시기를 통과해 나가고 있는지 서로의 시간으로부터 힘을 얻는 것이 중요한 때라는 판단에서 계획되었습니다. 단지 계획만으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이 작은 프로젝트에 그동안 월례움직임에 여러 방식으로 참여해 주신 분들이 한 조각씩 만들어나가 주셨습니다. 안부가 담긴 편지는 월례움직임 뉴스레터 구독자 분들께 한 달에 한 번씩 이메일로 발송되었으며, 월례움직임 홈페이지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 2021년 한해동안 10명의 작가분들이 편지를 보내주셨습니다.
* 2021년 한해동안 10명의 작가분들이 편지를 보내주셨습니다.
레터프로젝트, Program 48
10월
제니조
제니조는 전 지구화된 현대사회 속 모호해진 시각예술의 주체성과 작가의 정체성에 관해 질문한다. 회화의 확장된 매체성과 비선형적인 역사적 흐름 안에서 여성 회화작가로서의 다층적 시각과 정체성을 탐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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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터프로젝트, Program 47
9월
윤자영
2015년부터 공연을 만들어오고 있다. 주로 극장에서 작업을 해오고 있으며 최근엔 사건의 발생을 만들 수 있는 다른 환경을 상상하기도 한다. 이미지와 상황을 만드는 몸과 텍스트, 장면에 관심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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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터프로젝트, Program 46
8월
정언진
디자인을 전공하였지만 어린 시절 배운 춤에 대한 오랜 그리움이 있었다. 성인이 되어 사회에 나간 어느 날 즉흥춤을 만나고 삶을 바라보는 시각이 바뀐 후 춤을 통해 몸과 마음을 공부하면 나의 쓸모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이후 한동안 다원예술작가들의 작업에 참여하여 안무 창작, 퍼포머, 시각 창작물 등을 만드는 사람으로 쓰였다. 현재는 아이를 키우며 ‘삶 그대로의 삶’을 살고 있다. 세상의 원형에 대한 질문들을 하며 과거, 현재, 앞으로의 삶을 잇는 길을 찾고 있다.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서 만나는 인연에게 나이를 떠나 성인이라면 높임말을 쓰는 게 익숙한 터라 처음엔 레터 프로젝트에서 반말을 쓰는 게 불편했어. 그래서 나는 이 편지를 훗날 나에게 쓰는 편지라 생각하며 쓰려고 해. 종종 내게 찾아오는 인터뷰 기회들을 떠올려보면 인터뷰어가 던진 그 질문들을 찾는 과정에서 그 순간 나에 대해 모처럼 깊이 생각하며 갈무리할수 있어 기뻤던 기억이 있거든. 이번엔 내가 스스로 지금의 나를 갈무리하는 시간이라 생각하며 편지글을 시작해볼게.
레터 프로젝트가 작년부터 이어진 공연계의 특수한 상황에서 시작된 것이고, 서로 직접 만날 순 없지만 연결감을 잃지 않기 위해 시작된 것으로 알고 있어. 그러나 나에게 이런 상황의 고립감은 사실 훨씬 더 오래된 일이야. 출산과 육아로 인해서 말이야. 노력과 의지만으로 극복하기 힘들었어. 5년 전엔 나의 경력과 실력으로는 상상도 못할 좋은 기회도 왔었고 용감하게 시도도 해 보고 작업에 대한 피드백도 좋았지만 결국 작업에 대한 책임감에 드는 에너지와 그로 인한 긴장은 오롯이 아이에게 전해졌지. 아이를 혼자 보는 시간이 대부분인 엄마라는 역할을 맡고 있는 상황에서 이 아이가 나로부터 받는 영향이 너무나 크다는 걸 느끼고 나니 나는 내 앞에 놓인 기회를 무리해서 잡을 수 없었어. 그래서 최대한 일상을 해치지 않으며 아이와 함께 성장할 수 있는 공부거리를 찾아 한동안 그 분야에 대해 공부했어.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 또한 오롯이 아이를 이해하지 못하고 나의 지적 욕구가 앞선 선택이 아니었나 생각하게 되는 요즘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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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가까이 어느 즈음, 나는 로버트 레드포드의 팬인 엄마와 어렸을 때 본 영화 ‘내추럴’ 중 한 대사가 떠올랐어. 10대 때 만나 하룻밤을 함께 한 남자 주인공의 아이를 홀로 낳아 키우는 여자 주인공이 임신 사실도 모른 채 야구선수로서의 성공을 찾아 떠난 남자 주인공과 재회 후 한 이야기야. 옛 연인에게 여자 주인공은 이렇게 말하지 “두 가지의 삶이 있어요. 배우며 사는 삶과 삶 그대로 사는 삶. 그것이 기록을 깨던 깨지 않던…” 아직도 이 대사를 기억하는 걸 보면 공부 잘해 대학가는 게 전부인 줄 알았던 어린 시절에 꽤나 충격을 주었던 것 같아. 그러나 그땐 내 안으로 온전히 받아들이기엔 아직 부딪힘이 있는 말이었어. 하지만 어느 순간, 그냥 알겠더라. 삶 자체는 살아가는 걸로 의미가 있다는걸. 주어진 것의 수용은 얼핏 수동적으로 보이지만 내적으로는 가장 능동적인 삶의 태도가 아닐까 해. 그래서 내게 주어진 삶의 지도를 이해하고 내게 주어진 것을 저항하지 않고 온전히 받아 들여야 그 안에서 나를 위해 할 수 있는 일들을 더 빨리 발견하게 되는 것 같아.
아이러니하게 대면 작업이 어려워진 공연계의 현재 상황과는 반대로 나는 되려 올해 다시 작업을 시작할 수 있는 기회들이 왔어. 연습 과정과 회의 과정을 온라인으로 진행하는 시도들이 늘면서 되려 나 같이 이미 무용계에서 고립된 사람에게까지 기회가 오는 경험을 하고 있어. 그리고 공연 관람도 마찬가지야. 아이 맡길 곳이 없는 나는 평일 저녁시간 공연들은 아예 배제해야 했고 주말마저 남편의 일과가 없어야 공연을 보는 게 가능했기 때문에 몇 번의 공연 취소와 좌절 끝에 점점 공연 보는 시도 자체를 포기하게 되었어. 그래도 꼭 보고 싶은 공연엔 아이를 데리고 함께 갔는데 아직 미취학 어린이가 볼 수 있는 공연은 많지 않아. 내가 아이를 데리고 공연장에 다니는 모습이 잘 모르는 사람들에겐 아이에게 문화생활을 제공해 주고 싶어그런 걸로 오해를 사기도 하는데 사실 아이를 맡길 수 없는 상황에서 내가 공연을 보기 위한 궁여지책이었어. 그런데, 작년부터 시작된 온라인 공연 덕에 나는 반가운 지인들의 공연을 여느 때보다 많이 볼 수 있었지. 나에겐 되려 창작을 함께 했던 동료들과 온라인으로 더 이어져 있음을 느끼는 시간이야. 그들은 빈 객석에서 공연을 하고 있지만 더 많은 사람에게 가닿았음을 느꼈으려나. 그리고 내가 몸을 움직여 본 경험이 있어 화면으로도 움직임에서 몸의 에너지를 어느 정도 읽을 수 있다는 사실도 발견했어. 그건 내가 몸을 움직여 보았기 때문이라는 걸바로 알아챘어. 참 다행이지. 온라인 공연으로도 에너지를 느낄 수 있는 감각이 이미 내 몸에 있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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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식물 탐구를 함께 하기 시작 한 작가들과 산에서 잠시 각자의 시간을 가졌는데, 우연히 한 버섯에 손을 대었다가 전류가 흐르는 것 같은 느낌을 경험했어. 그러고 나니 다른 식물들이 만들어내는 파장을 느껴보고 싶어 한동안 나뭇잎 하나하나를 만져보며 걸었어. 아쉽게도 온전히 파장을 느끼지는 못했지만, 대신 몇 걸음 걷지 않아 잎이 가진 질감의 다양함을 느꼈어. 손이 벨 것 같은 날카로운 풀, 그 옆에 아기 피부 같은 보드라운 잎들 그리고 매끄럽지만 질기고 강인한 잎, 푸석푸석하고 거칠거칠한 느낌을 주는 잎들… 이 좁은 공간에도 참 여러 성격의 잎들이 같이 어우러져있는데, 사람 사는 곳도 마찬가지겠지. 그리고 잎이 질기고 거칠수록 한해살이풀이나 줄기가 가늘고 생의 주기가 짧은 친구들이었지. 이 질기고 거친 풀잎은 하나 꺾으려 들자면 잎과 이어진 줄기부터 뿌리까지 땅을 잔뜩 움켜쥐고서 꺾으려는 나의 손을 온몸으로 저항하지만, 쉽게 꺾이는 보드라운 잎을 가진 식물의 줄기는 흔들리지 않는 견고하고 기둥같이 튼튼한 중심을 가지고 있었어. 잎 하나 즈음 희생해도 나는 다시 회복할 수 있다는 듯이 말이야. 나의 여리고 어설픈 부분을 마주하는 게 힘들고 그 모습을 스스로 한동안 미워했던 내 모습을 들여다보았어. 하지만 나를 찾아온 어려움들은 느리지만 묵혀서 사유하고 성장시킬 수 있는 힘이 내 안에 있기 때문에 다가온 것이라고 생각하기로 했어. 어려움 앞에 거칠고 날카롭게 싸우기보다 그 순간을 견디고 왜 나에게 이런 시간이 왔는지 이해하려는 방법을 택하는 사람인 나는, 줄기가 튼튼한 그 나무처럼 내게는 잎 하나 뜯어지는 아픔에 흔들리지 않을 수 있는 내면에 힘이 있어서 그런가 보다. 그리고 조금 욕심을 부리자면, 훗날 언젠가 내 줄기가 큰 둥치가 되어 다른 식물이 휘감아도 싹을 틔워도 내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는 그런 존재가 될 수 있기를 꿈꿔보아. 큰 나무의 줄기는 마치 하나의 솟아오른 땅처럼 그 안에 온갖 생명들이 들어와 생태계를 만들듯이 말이야. 세상은 늘 조화를 이루기 위해 다양함을 만들어내고, 내가 지금의 내 모습으로 살 수 있는 것도 나와 반대편에 있는 기질과 의식을 가진 사람들 덕분이지 않을까. 그래서 그분들의 존재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보려고 해. 그렇지만 천적과 공생관계를 구분하여 내가 있어야 할 곳을 찾는 현명한 감각은 더 키우기로. 자연의 모습도 그러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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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엔 파동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해. 살아 있는 모든 것은 파동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걸 조금씩 이해하고 느끼는 과정에 있어. 그리고 파동 안에서 계속해서 나를 분리하고 제어하고 ‘나’라는 고유의 개별성을 끊임없이 만들어 내는 것은 나의 자아이고. 자아는 나의 감각에서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하지. 감각은 나라는 개체가 세상을 수용하는 문이고. 나의 감각에 따라 세상을 보는 눈과 질은 또 달라지고. 그렇게 고유한 ‘나’라는 개념이 만들어지는 것 같아. 감사히도 나와는 참 다른, 아직 감각이 하나씩 완성되어 가는 중인 아이를 키우며 감각이라는 인식의 창의 중요함을 느끼기 시작하였고, 덕분에 타인이 가진 감각이 얼마나 다른지 생각해 보기도 하고 그에 관해 호기심을 갖게 되었어. 그리고 감각을 넘어 내 주변에 공명하고 있는 파동의 존재를 알고 ‘나’라는 자아 밖에 나와 너는 이어져 있다는 걸 잊지 않으려고 해. 내 안에서 이 세상에서 똑떨어진 외로운 자아가 느껴질 때는 때는 풀벌레 소리를 들으러 집 밖으로 나가. 그 소리를 한참 듣다 보면 내 몸 세포들의 주파수가 세상의 주파수에 맞춰져 세상의 품 안으로 다시 들어갈 수 있는 힘을 얻어. 네가 ‘나’라는 자아 안에서 ‘나’라고 규정한 벽을 조금씩 얇게 만들어 주변의 파동에 공명해 간다면 너와 연결된 많은 사람에게도 변화가 오지 않을까? 그리고 한 친구의 삶의 모습과 말을 통해서 배운 건데, 나 스스로에게 좀 더 친절해지고 다독여주며 목소리를 잘 들어주고 보살피다 보면 그 태도는 타인을 대할 때도 똑같이 반영되어 주변을 환하게 만들어. “당신이 풀잎 하나를 자르면 우주가 흔들린다."라는 중국 속담이 있어. 조금씩 내 안에 작은 부분들까지 세심히 돌보아주는 시도를 하면서 내 주변의 사람들에게도 변화가 오는 것을 조금씩 느끼고 있어. 오늘의 나는 어제의 나보다 조금씩 성장하고 있다는 걸 믿으려 해. 혹시나 지금 감당하기 힘든 어려움을 안고 있다면 언젠가 그전에 내가 알지 못하던 곳으로 날 이끌어주기 위한 길이 준비하고 있을 테니 이 시간을 내 안에서 잘 녹여보아. 그리고 그 터널을 지나 오면 그 순간이 연금술처럼 너에게 값진 시간으로 변해 있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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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8. 31. 언진
레터 프로젝트가 작년부터 이어진 공연계의 특수한 상황에서 시작된 것이고, 서로 직접 만날 순 없지만 연결감을 잃지 않기 위해 시작된 것으로 알고 있어. 그러나 나에게 이런 상황의 고립감은 사실 훨씬 더 오래된 일이야. 출산과 육아로 인해서 말이야. 노력과 의지만으로 극복하기 힘들었어. 5년 전엔 나의 경력과 실력으로는 상상도 못할 좋은 기회도 왔었고 용감하게 시도도 해 보고 작업에 대한 피드백도 좋았지만 결국 작업에 대한 책임감에 드는 에너지와 그로 인한 긴장은 오롯이 아이에게 전해졌지. 아이를 혼자 보는 시간이 대부분인 엄마라는 역할을 맡고 있는 상황에서 이 아이가 나로부터 받는 영향이 너무나 크다는 걸 느끼고 나니 나는 내 앞에 놓인 기회를 무리해서 잡을 수 없었어. 그래서 최대한 일상을 해치지 않으며 아이와 함께 성장할 수 있는 공부거리를 찾아 한동안 그 분야에 대해 공부했어.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 또한 오롯이 아이를 이해하지 못하고 나의 지적 욕구가 앞선 선택이 아니었나 생각하게 되는 요즘이야.

서른 가까이 어느 즈음, 나는 로버트 레드포드의 팬인 엄마와 어렸을 때 본 영화 ‘내추럴’ 중 한 대사가 떠올랐어. 10대 때 만나 하룻밤을 함께 한 남자 주인공의 아이를 홀로 낳아 키우는 여자 주인공이 임신 사실도 모른 채 야구선수로서의 성공을 찾아 떠난 남자 주인공과 재회 후 한 이야기야. 옛 연인에게 여자 주인공은 이렇게 말하지 “두 가지의 삶이 있어요. 배우며 사는 삶과 삶 그대로 사는 삶. 그것이 기록을 깨던 깨지 않던…” 아직도 이 대사를 기억하는 걸 보면 공부 잘해 대학가는 게 전부인 줄 알았던 어린 시절에 꽤나 충격을 주었던 것 같아. 그러나 그땐 내 안으로 온전히 받아들이기엔 아직 부딪힘이 있는 말이었어. 하지만 어느 순간, 그냥 알겠더라. 삶 자체는 살아가는 걸로 의미가 있다는걸. 주어진 것의 수용은 얼핏 수동적으로 보이지만 내적으로는 가장 능동적인 삶의 태도가 아닐까 해. 그래서 내게 주어진 삶의 지도를 이해하고 내게 주어진 것을 저항하지 않고 온전히 받아 들여야 그 안에서 나를 위해 할 수 있는 일들을 더 빨리 발견하게 되는 것 같아.
아이러니하게 대면 작업이 어려워진 공연계의 현재 상황과는 반대로 나는 되려 올해 다시 작업을 시작할 수 있는 기회들이 왔어. 연습 과정과 회의 과정을 온라인으로 진행하는 시도들이 늘면서 되려 나 같이 이미 무용계에서 고립된 사람에게까지 기회가 오는 경험을 하고 있어. 그리고 공연 관람도 마찬가지야. 아이 맡길 곳이 없는 나는 평일 저녁시간 공연들은 아예 배제해야 했고 주말마저 남편의 일과가 없어야 공연을 보는 게 가능했기 때문에 몇 번의 공연 취소와 좌절 끝에 점점 공연 보는 시도 자체를 포기하게 되었어. 그래도 꼭 보고 싶은 공연엔 아이를 데리고 함께 갔는데 아직 미취학 어린이가 볼 수 있는 공연은 많지 않아. 내가 아이를 데리고 공연장에 다니는 모습이 잘 모르는 사람들에겐 아이에게 문화생활을 제공해 주고 싶어그런 걸로 오해를 사기도 하는데 사실 아이를 맡길 수 없는 상황에서 내가 공연을 보기 위한 궁여지책이었어. 그런데, 작년부터 시작된 온라인 공연 덕에 나는 반가운 지인들의 공연을 여느 때보다 많이 볼 수 있었지. 나에겐 되려 창작을 함께 했던 동료들과 온라인으로 더 이어져 있음을 느끼는 시간이야. 그들은 빈 객석에서 공연을 하고 있지만 더 많은 사람에게 가닿았음을 느꼈으려나. 그리고 내가 몸을 움직여 본 경험이 있어 화면으로도 움직임에서 몸의 에너지를 어느 정도 읽을 수 있다는 사실도 발견했어. 그건 내가 몸을 움직여 보았기 때문이라는 걸바로 알아챘어. 참 다행이지. 온라인 공연으로도 에너지를 느낄 수 있는 감각이 이미 내 몸에 있어서.


얼마 전 식물 탐구를 함께 하기 시작 한 작가들과 산에서 잠시 각자의 시간을 가졌는데, 우연히 한 버섯에 손을 대었다가 전류가 흐르는 것 같은 느낌을 경험했어. 그러고 나니 다른 식물들이 만들어내는 파장을 느껴보고 싶어 한동안 나뭇잎 하나하나를 만져보며 걸었어. 아쉽게도 온전히 파장을 느끼지는 못했지만, 대신 몇 걸음 걷지 않아 잎이 가진 질감의 다양함을 느꼈어. 손이 벨 것 같은 날카로운 풀, 그 옆에 아기 피부 같은 보드라운 잎들 그리고 매끄럽지만 질기고 강인한 잎, 푸석푸석하고 거칠거칠한 느낌을 주는 잎들… 이 좁은 공간에도 참 여러 성격의 잎들이 같이 어우러져있는데, 사람 사는 곳도 마찬가지겠지. 그리고 잎이 질기고 거칠수록 한해살이풀이나 줄기가 가늘고 생의 주기가 짧은 친구들이었지. 이 질기고 거친 풀잎은 하나 꺾으려 들자면 잎과 이어진 줄기부터 뿌리까지 땅을 잔뜩 움켜쥐고서 꺾으려는 나의 손을 온몸으로 저항하지만, 쉽게 꺾이는 보드라운 잎을 가진 식물의 줄기는 흔들리지 않는 견고하고 기둥같이 튼튼한 중심을 가지고 있었어. 잎 하나 즈음 희생해도 나는 다시 회복할 수 있다는 듯이 말이야. 나의 여리고 어설픈 부분을 마주하는 게 힘들고 그 모습을 스스로 한동안 미워했던 내 모습을 들여다보았어. 하지만 나를 찾아온 어려움들은 느리지만 묵혀서 사유하고 성장시킬 수 있는 힘이 내 안에 있기 때문에 다가온 것이라고 생각하기로 했어. 어려움 앞에 거칠고 날카롭게 싸우기보다 그 순간을 견디고 왜 나에게 이런 시간이 왔는지 이해하려는 방법을 택하는 사람인 나는, 줄기가 튼튼한 그 나무처럼 내게는 잎 하나 뜯어지는 아픔에 흔들리지 않을 수 있는 내면에 힘이 있어서 그런가 보다. 그리고 조금 욕심을 부리자면, 훗날 언젠가 내 줄기가 큰 둥치가 되어 다른 식물이 휘감아도 싹을 틔워도 내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는 그런 존재가 될 수 있기를 꿈꿔보아. 큰 나무의 줄기는 마치 하나의 솟아오른 땅처럼 그 안에 온갖 생명들이 들어와 생태계를 만들듯이 말이야. 세상은 늘 조화를 이루기 위해 다양함을 만들어내고, 내가 지금의 내 모습으로 살 수 있는 것도 나와 반대편에 있는 기질과 의식을 가진 사람들 덕분이지 않을까. 그래서 그분들의 존재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보려고 해. 그렇지만 천적과 공생관계를 구분하여 내가 있어야 할 곳을 찾는 현명한 감각은 더 키우기로. 자연의 모습도 그러하니…

요즘엔 파동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해. 살아 있는 모든 것은 파동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걸 조금씩 이해하고 느끼는 과정에 있어. 그리고 파동 안에서 계속해서 나를 분리하고 제어하고 ‘나’라는 고유의 개별성을 끊임없이 만들어 내는 것은 나의 자아이고. 자아는 나의 감각에서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하지. 감각은 나라는 개체가 세상을 수용하는 문이고. 나의 감각에 따라 세상을 보는 눈과 질은 또 달라지고. 그렇게 고유한 ‘나’라는 개념이 만들어지는 것 같아. 감사히도 나와는 참 다른, 아직 감각이 하나씩 완성되어 가는 중인 아이를 키우며 감각이라는 인식의 창의 중요함을 느끼기 시작하였고, 덕분에 타인이 가진 감각이 얼마나 다른지 생각해 보기도 하고 그에 관해 호기심을 갖게 되었어. 그리고 감각을 넘어 내 주변에 공명하고 있는 파동의 존재를 알고 ‘나’라는 자아 밖에 나와 너는 이어져 있다는 걸 잊지 않으려고 해. 내 안에서 이 세상에서 똑떨어진 외로운 자아가 느껴질 때는 때는 풀벌레 소리를 들으러 집 밖으로 나가. 그 소리를 한참 듣다 보면 내 몸 세포들의 주파수가 세상의 주파수에 맞춰져 세상의 품 안으로 다시 들어갈 수 있는 힘을 얻어. 네가 ‘나’라는 자아 안에서 ‘나’라고 규정한 벽을 조금씩 얇게 만들어 주변의 파동에 공명해 간다면 너와 연결된 많은 사람에게도 변화가 오지 않을까? 그리고 한 친구의 삶의 모습과 말을 통해서 배운 건데, 나 스스로에게 좀 더 친절해지고 다독여주며 목소리를 잘 들어주고 보살피다 보면 그 태도는 타인을 대할 때도 똑같이 반영되어 주변을 환하게 만들어. “당신이 풀잎 하나를 자르면 우주가 흔들린다."라는 중국 속담이 있어. 조금씩 내 안에 작은 부분들까지 세심히 돌보아주는 시도를 하면서 내 주변의 사람들에게도 변화가 오는 것을 조금씩 느끼고 있어. 오늘의 나는 어제의 나보다 조금씩 성장하고 있다는 걸 믿으려 해. 혹시나 지금 감당하기 힘든 어려움을 안고 있다면 언젠가 그전에 내가 알지 못하던 곳으로 날 이끌어주기 위한 길이 준비하고 있을 테니 이 시간을 내 안에서 잘 녹여보아. 그리고 그 터널을 지나 오면 그 순간이 연금술처럼 너에게 값진 시간으로 변해 있을 거야.

2021. 8. 31. 언진
레터프로젝트, Program 45
7월
윤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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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터프로젝트, Program 44
6월
김지연 / 11
저는 소리를 주요 매체로 듣기의 감각과 경험, 생각들을 나누는 작업들을 해왔어요. 음악을 만들때는 피아노와 전자장비, 녹음한 소리들, 허밍을 재료로 쓰는 편입니다. 11이라는 이름으로 2014년부터 몇장의 음반을 냈고, 최근에는 영화음악작업을 해오고 있어요. 엄마 근처에서 이강일씨, 미미, 마틴과 함께 은평구에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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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터프로젝트, Program 43
5월
황혜란
2021년 현재 궁리소 뛰다의 궁리원으로 화천 예술텃밭에서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2001년 – 2020년 공연창작집단 뛰다 단원)
몸으로 생각하는 배우라는 직업을 가져서 참 다행이라 여기며, 배우 노릇을 할 때가 젤로 신나지만 학교와 예술텃밭 등에서 학생들 가르치기, 워크숍 진행, 드라마투르그, 레지던시 기획과 진행, 글쓰기, 출판편집 일 등도 꽤나 즐기며 하고 있다. 최근엔 예술가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밥상을 차리겠다는 야심을 품고 소소하게 걸음을 떼고 있다.
2021년 현재 궁리소 뛰다의 궁리원으로 화천 예술텃밭에서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2001년 – 2020년 공연창작집단 뛰다 단원)
몸으로 생각하는 배우라는 직업을 가져서 참 다행이라 여기며, 배우 노릇을 할 때가 젤로 신나지만 학교와 예술텃밭 등에서 학생들 가르치기, 워크숍 진행, 드라마투르그, 레지던시 기획과 진행, 글쓰기, 출판편집 일 등도 꽤나 즐기며 하고 있다. 최근엔 예술가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밥상을 차리겠다는 야심을 품고 소소하게 걸음을 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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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터프로젝트, Program 42
4월
최인혜
발레로 무용을 시작했으나 존재의 움직임 언어로서의 즉흥춤을 사랑한다. 무용수로 움직임 창작자로 예술강사로 활동해 왔고 경계와 마이너의 목소리를 사랑한다. 스스로 창작자로 명명하고 느리지만 나의 언어를 찾는 과정에 성실하겠다고 다짐하는 예술인이다
발레로 무용을 시작했으나 존재의 움직임 언어로서의 즉흥춤을 사랑한다. 무용수로 움직임 창작자로 예술강사로 활동해 왔고 경계와 마이너의 목소리를 사랑한다. 스스로 창작자로 명명하고 느리지만 나의 언어를 찾는 과정에 성실하겠다고 다짐하는 예술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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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터프로젝트, Program 41
3월
해미 클레멘세비츠
해미 클레멘세비츠(Rémi Klemensiewicz)의 작업은 설치에서 라이브 퍼포먼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방식을 취하는데, 실험의 중심 재료로서 ‘소리’에 중점을 두고 있다. 단순하고 아날로그적인 재료와 과정을 통해, 시각과 청각 사이의 상관관계와 상호의존성에 관한 개념에 대해 질문하는 작업을 해왔다. 이 과정에서 시각과청각을 연결하는 도구로서 언어나 음악 기호 등의 시스템이 종종 사용된다. 그는 프랑스 마르세유에서 태어나 예술을 전공했다. 현재 서울에 거주하면서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해미 클레멘세비츠(Rémi Klemensiewicz)의 작업은 설치에서 라이브 퍼포먼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방식을 취하는데, 실험의 중심 재료로서 ‘소리’에 중점을 두고 있다. 단순하고 아날로그적인 재료와 과정을 통해, 시각과 청각 사이의 상관관계와 상호의존성에 관한 개념에 대해 질문하는 작업을 해왔다. 이 과정에서 시각과청각을 연결하는 도구로서 언어나 음악 기호 등의 시스템이 종종 사용된다. 그는 프랑스 마르세유에서 태어나 예술을 전공했다. 현재 서울에 거주하면서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2020년 3월 1일에 프랑스로 갔다. 아직까지 프랑스에 있으니 1년 (+1달) 전 부터 프랑스에 와 있는 것이다. 원래 계획은 1달 동안 프랑스에 있다가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하지만 아직까지 프랑스에 있다. 나는 거의 8 년 전부터 한국에 사는데 8년 동안 비자에 관한 문제가 자주 생겼다. 작년 초 부터 더 많은 문제들이 생겼다. 그래서 2020년 3월 1일에 프랑스로 갔다. 한 국 못 가고 계속 프랑스에 있는 것의 장점은 가족과 친구들을 만날 수 있는 것이다. 단점은 계속 이랬다 저랬다 하는 ‘락다운’과 6시 이후로 ‘야간 통행 금지’ 때문에 가족과 친구들을 많이 만날 수 없는 것이다. 프랑스로 도착했을 때, 아! 다음달이면 한국 갈 수 있겠다는 생각을 7월 쯤까지 했다. 7월 이후로 는, 아! 이 생각 그만 해야 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한국 집 비우 고 이사 업체를 불러서 짐을 뺐다. 이제는 한국 집 없는 관광객이 되었다. 내 입장에서는 억울하지만 잘 생각해 보니 어차피 이런 상황을 바꿀 수 있는 정 당성이 없다. 지난 1년 동안 아주 감사했던 게 계속 작업을 할 수가 있었던 것 이다. 한국에서 전시 여러 번 하고 재미 있는 프로젝트들 에도 참여하게 되었 다. “1년 동안 프랑스에 있으면서 작업을 할 거다”, 처음부터 이렇게 알았으면 좋았을텐데 문제는 한국에 곧 갈 수 있겠다는 생각 하면서 지냈다는 것이다. 항상 “무조건 봄이 되면 가야 한다”, 그 다음에는 “무조건 여름이 되면 가야 한다”, “무조건 가을이 되면 가야 한다”, “무조건 겨울이 되면 가야 한다”. 이 제 한 바퀴 돌아서 지금 “봄이 되면 갈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시기 되었다. 1 년 동안 ‘무조건’ 이라는 말을 좀 더 상대적인 뜻으로 인식하게 됐다. 최근에 실내에서 마스크 쓰는거 지겨워졌다. 실외에서 쓰는것이 한국에 살면서 너무 나 익숙한 일이지만 실내에서는 뭔가 느낌이 다르다. 다 그렇게 느끼겠지만 사람들이 대부분 타협을 잘 하는 것 같다. 한국 친구들한테 프랑스가 뉴스에 몇 번 나왔다는 소식을 들었다. 뉴스에 나온 이유는 프랑스에서 코로나 너무 심하고, 6월 21일에 (fête de la musique) 사람들이 아무렇지 않게 마스크 없이 파티를 했다는 내용이었다. 그 얘기 듣고, 아! 아직 시간 좀 걸리겠다는 생각을 하고 한국 집에서 짐을 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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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쪽으로는 요즘 음악을 많이 만든다. 최근에 미디 키보드를 사서 새로운 방식으로 음악 작곡하기 시작했다. 내 악기와 많은 음악 장비들이 한국에 있 고 멀리에서 무용 공연이나 연극을 위해 작곡해야 해서 이 미디 키보드가 아 주 좋은 친구 되었다. 반면에 멀리에서 설치 작업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내 가 없으면서 짐 챙기고 이동시키고 공간에 자리 잡고 영상 통화 하면서 설치 진행되는 것이 참 신기한 과정이었다. 전에 얘기했듯이 특권 가지는 느낌이었다. 사운드에 관한 작업 계속 하지만 지난 1년이 가장 조용한 시기였다. 마 르세유 말고 근처 시골에 되도록 가려고 한다. 거기서 집중력이->집중이 잘 되고 동물 소리 빼고는 소음이 없다. 책을 읽기에 좋은 환경이다. 프랑스 남 부에서 날씨 아주 좋다. 1년 동안 치즈 많이 먹어서 살 좀 쪘다. 1년 동안 한국 어를 많이 못 해서 중요한 단어들을 조금씩 까먹는다. 이 글 쓰는 것이 한국 어 연습이기도 하다. 하지만 프랑스에 있으면서 내가 규칙적으로 하는 일은 한국어를 사용해야 하는 일이다 : 한국인한테 불어를 가르치는 것과 프랑스 인한테 한국어를 가르치는 것이다. 모국어 가르치는 것보다는 내가 관심이 있어서 공부한 한국어를 가르치는 것이 훨씬 흥미롭다. 하지만 한국어로 말 하는 것보다 역시 쓰는 것이 어렵다. 나는 문장을 너무 짧게 쓰는 것 같다. 이 글을 읽는 독자의 고통을 내가 느낄 수 없다. ‘제대로 된 한국어 문장 만들 기’ 수업이 있다면 신청할 것이다. 분명히 있겠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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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언어 정확함의 중요성에 대해 자주 생각하게 된다. 요즘 같은 시기에 (뉴 스 보다가) 조지 오웰의 ‘신어’ 개념에 대해 다시 관심 생긴다. 언어 정확성 없 이 건강한 사회가 존재할 수 없다는 말과, 권력가나 세력가가 사용하는 ‘신어’ 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사고를 못 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는 말이 인상이 깊 다. 역설적인 얘기 같지만, ‘신어’의 성공을 막으려면 새로운 단어를 만들어야 한다는 얘기가 있다. 새로운 단어를 만들거나 원래 있는 단어의 다의성을 되 살려야 한다는 말도 있다. 그렇게 하려면 문학만큼 좋은 도구가 없다는 말이 있다. 가스통 바슐라르 하는 얘기 중에 하나는, 모든 단어들이 집 같다는 말 이 있다. 1층과 다락방과 지하실이 있다. 1층은 단어의 통상적 의미에 해당되 고, 다락방은 과학적/철학적/이성적 의미에 해당되고, 지하실은 불분명한 시 적/비유적/은유적 의미에 해당된다는 말이다. 일상에 언어를 이용하면서 우 리가 1층, 다락방, 지하실로 계속 왔다 갔다 한다는 것 같다. 우리가 이 집 안 에서 어떻게 움직이는지 궁금하다. 하지만 1년 전부터 많은 사람들이 (나 포 함) 이 집 안에서 길을 잃은 것 같다. 길을 잘 찾을 수 있는 비결이 없겠지만 일단 글을 쓰면서 어느 정도 정리가 된다. 이런 자문 하지 않아도 되는 시기 로 돌아왔으면 좋겠다. 이 때까지 힘 냅시다. 곧 만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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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쪽으로는 요즘 음악을 많이 만든다. 최근에 미디 키보드를 사서 새로운 방식으로 음악 작곡하기 시작했다. 내 악기와 많은 음악 장비들이 한국에 있 고 멀리에서 무용 공연이나 연극을 위해 작곡해야 해서 이 미디 키보드가 아 주 좋은 친구 되었다. 반면에 멀리에서 설치 작업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내 가 없으면서 짐 챙기고 이동시키고 공간에 자리 잡고 영상 통화 하면서 설치 진행되는 것이 참 신기한 과정이었다. 전에 얘기했듯이 특권 가지는 느낌이었다. 사운드에 관한 작업 계속 하지만 지난 1년이 가장 조용한 시기였다. 마 르세유 말고 근처 시골에 되도록 가려고 한다. 거기서 집중력이->집중이 잘 되고 동물 소리 빼고는 소음이 없다. 책을 읽기에 좋은 환경이다. 프랑스 남 부에서 날씨 아주 좋다. 1년 동안 치즈 많이 먹어서 살 좀 쪘다. 1년 동안 한국 어를 많이 못 해서 중요한 단어들을 조금씩 까먹는다. 이 글 쓰는 것이 한국 어 연습이기도 하다. 하지만 프랑스에 있으면서 내가 규칙적으로 하는 일은 한국어를 사용해야 하는 일이다 : 한국인한테 불어를 가르치는 것과 프랑스 인한테 한국어를 가르치는 것이다. 모국어 가르치는 것보다는 내가 관심이 있어서 공부한 한국어를 가르치는 것이 훨씬 흥미롭다. 하지만 한국어로 말 하는 것보다 역시 쓰는 것이 어렵다. 나는 문장을 너무 짧게 쓰는 것 같다. 이 글을 읽는 독자의 고통을 내가 느낄 수 없다. ‘제대로 된 한국어 문장 만들 기’ 수업이 있다면 신청할 것이다. 분명히 있겠다고 생각한다.

요즘 언어 정확함의 중요성에 대해 자주 생각하게 된다. 요즘 같은 시기에 (뉴 스 보다가) 조지 오웰의 ‘신어’ 개념에 대해 다시 관심 생긴다. 언어 정확성 없 이 건강한 사회가 존재할 수 없다는 말과, 권력가나 세력가가 사용하는 ‘신어’ 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사고를 못 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는 말이 인상이 깊 다. 역설적인 얘기 같지만, ‘신어’의 성공을 막으려면 새로운 단어를 만들어야 한다는 얘기가 있다. 새로운 단어를 만들거나 원래 있는 단어의 다의성을 되 살려야 한다는 말도 있다. 그렇게 하려면 문학만큼 좋은 도구가 없다는 말이 있다. 가스통 바슐라르 하는 얘기 중에 하나는, 모든 단어들이 집 같다는 말 이 있다. 1층과 다락방과 지하실이 있다. 1층은 단어의 통상적 의미에 해당되 고, 다락방은 과학적/철학적/이성적 의미에 해당되고, 지하실은 불분명한 시 적/비유적/은유적 의미에 해당된다는 말이다. 일상에 언어를 이용하면서 우 리가 1층, 다락방, 지하실로 계속 왔다 갔다 한다는 것 같다. 우리가 이 집 안 에서 어떻게 움직이는지 궁금하다. 하지만 1년 전부터 많은 사람들이 (나 포 함) 이 집 안에서 길을 잃은 것 같다. 길을 잘 찾을 수 있는 비결이 없겠지만 일단 글을 쓰면서 어느 정도 정리가 된다. 이런 자문 하지 않아도 되는 시기 로 돌아왔으면 좋겠다. 이 때까지 힘 냅시다. 곧 만나길 바란다.
2021년 3월 30일 Rémi Klemensiewicz

레터프로젝트, Program 40
2월
유디렉
유기태아트디렉터로 활동하다, 호칭 끝에 선생님을 붙이시는 분들로 인해 유기태아트디렉터선생님은 너무 길다 싶어, 활동명을 유디렉으로 수정한 후 플레이스막 이라는 갤러리를 운영하고 있는 유디렉 이라고 합니다.
www.placemak.com로젝트
유기태아트디렉터로 활동하다, 호칭 끝에 선생님을 붙이시는 분들로 인해 유기태아트디렉터선생님은 너무 길다 싶어, 활동명을 유디렉으로 수정한 후 플레이스막 이라는 갤러리를 운영하고 있는 유디렉 이라고 합니다.
www.placemak.com로젝트
레터 프로젝트의 정확한 취지를 인지치 못하고 누가 볼까 예민글로 도배해버린 첫 번째 글은 나가리 시켜버렸지. 제 안부가 궁금하실 님들이 보기에 편하기 보단, 내가 내 안부가 어떤지 보기에 적합한 편지를 써보려 해. 결혼 전 민이(아내)에게, 혹시 아이가 생기면 육아는 내가 책임질게 라고 호언장담 했던 세 치 혀를 얻다 팔고 싶은 요즘이야. 나는 민이가 임신 중에 미리 공부를 해보겠다며 육아전문 맘카페를 뒤지며 남의 사생활 멘트를 기웃대는 시기가 있었지. 참고로, 남성 가입이 안 되는 맘카페도 있으니 아내 신상 정보를 잘 외우고 다녀야해. 그중 인상 깊은 이야기 하나는, 엄마들이 아이를 던지고 싶다며 힘들다는 수기 글에 다른 엄마들이 자기도 그렇다며 죄의식과 죄책감을 동반하는 댓글들을 보게 되었어. 문제는 이런 감정의 글들이 꽤 올라온다는 거야. 그땐 아휴 너무 나약한 거 아니야? 내 아기를 던진다고? 힘들어서? 문제 맘들 이구만...이라며 설레발 평가를 나불대었지. 지금의 나는 어떠냐고? 육아를 책임지겠다 했던 개소리가 부끄러울 뿐이지. 이게 남성은 그 책임 자체가 불가능 한 게, 모유를 먹이게 되면 시간의 분할이 엄마 쪽으로 크게 기울 수밖에 없어. 일단, 첫 석 달 정도는 매일 2시간에 한 번 꼴로 모유를 먹이거든. 그냥 엄마 품에 계속 있을 수밖에 없어가 맞아. 게다가, 남편님들이 집 밖으로 일을 나가게 되면 아기를 눈으로 보는 시간도 없구먼 무슨 책임을 져. 그나마, 최수종형이나, 차인표형, 션님 정도 되는 분들이 퇴근하고 돌아와 빨래하고, 청소하고, 설거지하고 하는 거야. 근데, 여기서 나는 뭐 놀다왔나? 집에 드가면 쉬고 싶잖아. 그러니 쌓여있는 설거지거리들을 보면서도 밖에서 일했다는 합리화로 스윽 지나치기 일쑤지. 그럼 나는 어떠냐고? 코로나가 한 몫 한 게, 작년 말부터 올 초까지 일이 줄면서 2개월 정도는 꽉 차게 집에 있었던 적이 있었지. 그때 민이와 솔(아기)이랑 함께 있었거든. 내 잠깐 한마디 하자면, 출근해 유격훈련 다녀 온 거 아니면, 설거지 지나치지 맙시다야. 그나마 솔이는 잠을 잘 잤어. 흔히 통잠이라고 하는데, 신생아 때부터 훈련을 통해 새벽에 깨지 않고 쭈욱 잠을 자게 만드는 거야. 물론 이게 아기 스스로 되는 게 아니야. 부모가 날밤 새가며 길게는 한 달, 적게는 2주를 지지고 볶고 해서 만들어 내는 건데, 여기서 젠장인게 중간에 깨울 수밖에 없어. 밥을 먹여야 하고, 기저귀를 갈아줘야 하거든. 그냥 아침에 밥 먹이면 안 돼? 기저귀 아침에 갈아주면 안 돼? 여기서부터 이제 대화가 어려운 겨~ 엄마의 모유는 가슴에 채워지는 양의 발란스를 맞춰야해. 이걸 못 맞추면 젖몸살이라는...민이 말로는 아이 출산 때만큼 아프다는 고통을 엄마가 받아. 그래서 때마다 모유를 빼 줘야해. 유축이라는 것도 하고 그러는데, 아기는 많은 양의 음식을 쟁여놓을 수 있는 능력이 아직........아휴...됐고. 그럼 기저귀는? 너가 똥오줌 가득한 하체로 같이 잔다고 생각해봐. 됐지? 하여튼 그래서 아무리 통잠교육이 되었다 하더라도 아기를 깨울 수밖에 없어. 그럼 모유먹이고, 기저귀 갈고 잠자리 누이면 바로 잘 거 같애? 물론 아니지. 그래서 잠을 못자. 물론 낮에도 못자. 일상을 치러야 하니깐. 그래서 정신이 나가. 게다가 낮에 아이를 안고 있는 시간이 대부분이라 육체적인 힘을 발끝부터 허리를 지나 목 근육까지 사용해야 해. 기진맥진이지. 근데 휴식할 타이밍을 못 잡아. 그래서 정신이 또 나가. 이걸 2개월 정도 함께 했지. 지금도 민이는 내가 없을 때 홀로 하고 있고, 나는 퇴근 후 들어가 마주하는 설거지를 지나치지 않으려고 노력 중이지. 그래도 솔이의 밤잠은 내가 100% 책임지고 있다구. 이게 운동감 있는 요즘의 내 안부야. 그럼 이제 정신적인 안부를 말해볼게. 아이가 존재하기 십년 전쯤, 자녀가 있는 친누나와 대화를 한 적이 있어. “이런 환경에서 아이를 낳는 것이 옳은 것인지 모르겠어, 환경오염도 심하고, 결여된 인류애에, 자본주의로 인한 사회문제들...이런 것만 물려주는 거 아닌가 모르겠어”, 누나 왈 “너가 키운다고 생각하지 마렴, 아이는 스스로 자라고, 그 아이가 너에게 뭐가 옳은지 알려줄 거야.” 친누나의 답변은 근사한 울림이 있는 답변이었어. 그럼 그냥 둬? 말도 안 되지. 나는 자연인이다가 아니잖아. 고민이 되는 거야. 향후 솔이가 사람을 그릴 때 코와 입은 안 그릴 수도 있는 세상이니 우짜면 좋노. 세상에 맞설 본을 알려줄 애비가 이글을 쓰고 있는 현시점에서 017 2G폰에서 스마트폰으로 넘어 온지 채 한 달도 안 된 구석기인이니 앞으로 솔이를 우짜면 좋노가 시작된 거야. 게다가 부모 모두 미술인들이라 현실적인 부분도 남들보다 쫓기는 입장인거 같구. 벌써부터 주변 지인부모들을 만나면 사교육비를 물어보고 있다니깐...물론 들으면 입이 쩍. 그래서 결론까진 아니지만 사유의 튼튼한 독립성을 키워 주는 게 우리 입장에선 맞겠다 싶어서 방법을 찾고 있어. 지혜롭고 슬기롭게 사유하는 능력을 알려주는 거지. 세 치 혀가 여전한 거지 ㅎㅎ. 여하튼, 물질보단 생각과 감정의 풍요를 더욱 크게 느끼는 자세를 키워주고 싶은 거지. 문제는 내가 그러고 있냐는 거야. 그래서 살펴봤지. 내 야망과 물욕의 욕망들을. 사실 자본과 권력은 나쁜 게 아니잖아. 그걸 모으는 과정과 사용하는 태도가 문제인거지. 근데, 여기서 내가 취하는 태도가 씁쓸한 게, 멀리 볼 필요도 없어. 예를 들어 환경 보호를 한다며 분리수거를 끔찍이 행하는 중이라고 쳐. 와중에 배달음식을 시킬 경우 일회용 포장재의 남용으로 자책하게 되는 부조리가 온다는 거야. 이런 궁핍한 인내력을 확인 할 때 마다 솔이에게 보여주고 싶은 아름다움이 스스로에게 가식이 된다는 거지. 이게 위선이 아니고, 한계가 아니고 모든 게 과정이니 그 안에서 현명해야 함을 알려주고 싶은데, 그게 참 어려워. 아기 교육에 관한 책들을 살피자면 너무 피상적이라 다가오진 않고, 천재를 키운 부모를 다룬 유투브를 찾아보며 ‘쳇’ 이러고 있지. 이래서 나이가 들면 내 부모를 생각 한다는 게 이럴 때도 해당 되는 거 같아. 그럼 나는 나의 부모에게 어찌 교육을 받았을까? 그래서 현재 나는 어떠한가? 부모님 생각하니 바로 눈물 함 쏟아내 주시고~~~ ...살펴보자면, 볼 것도 없지. 사랑을 보여주신 거 같아. 이 편지를 쓰다 깨닫게 되네. 내가 솔이에게 무엇을 함께 해야 하는지 말이야. 여기까지가 요즘 정신적으로 고민하는 내 안부야. 오랜만에 쓰는 편지라 새삼 이 글이 뜻이 깊어지네. 편지도 글이니 마무리가 항상 고민돼. 그래서 이만한 게 없지 라는 마음으로 진심을 다해 마무리 해 볼께. 민이야, 솔이야 그리고 기태야 사랑해.
아기의 시선에 혼란을 주어 잠시 부모를 쉬게 만드는 장치
당근마켓의 위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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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터
종량제를 향해 대기중인 1회용 부조리들
2021년 2월 23일 유디렉
아기의 시선에 혼란을 주어 잠시 부모를 쉬게 만드는 장치
당근마켓의 위력
전쟁터
종량제를 향해 대기중인 1회용 부조리들레터프로젝트, Program 39
1월
안무가 허윤경
물에 수생식물을 띄워 키우고 있는데, 넣어준 흙에 알이 섞여 들어간건지, 물 안에 고둥? 물달팽이? 한마리가 살고 있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벽이나 바닥, 잎의 뒷면에 붙어있거나 뿌리를 타고 이동하기도 하는 이 고둥의 가장 신기한 이동경로는 바로 ‘수면’이다. 수면 아래에 거꾸로 붙어서 잎과 잎 사이를 마치 유리바닥인 듯 기어가는 고둥의 배를 내려다보고 있자면, 아, 수면도 면이였지, 하는 생각과 함께 저 면을 경계로 거꾸로 세워져 있는 또다른 세계를 상상하게 된다. 고둥이 수면 밖으로 입을 내밀어 뻐끔뻐끔 공기를 마실 때도 있다. 내가 연못에서 물을 축이고 있는 것을 물 아래에 있는 누군가 올려다본다면 딱 저런 모습이겠지? 그런 의미에서 거울 같은 구도라고 우겨볼 수도 있으려나.
기르고 있는 식물들- 박쥐란, 물배추와 개구리밥, 그리고 이름을 까먹은 다육식물. 겨울이 무사히 지나가길 기다리고 있다.
서로 다른 두 세계 사이에 위치한 이 표면장력을 감상하고 있자니, 문득 면과 막의 뒤편에 있는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된다. 그러고 보면, 공연예술인들이 그 어느 때보다도 (화)면 뒤에 있을 또 다른 세계를 상상할 수밖에 없는 시기라고도 할 수 있겠다. 작년 한해 많은 공연들이 온라인 전환되었고, 관객은 모니터 뒤, 공연을 준비하는 사람들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 ‘한 칸에 한 명씩’ 있게 되었다. 나의 경우는 최근에 마친 ‘미니어처 공간극장’의 다섯 번째 공연이 그에 해당했다.
그러다 보니 요즘의 안부는 현재 마무리 단계에 있는 이 작업과 연결이 되지 않을 수 없다. 현재 나는 이 작업의 결과와 과정에 대해, 객관적인 언어로 정리하고 공유해보자는 과제를 스스로에게 내린 상태이다. 그 공유에 있어서 나 자신을 어느 위치에 두고 어떤 질문을 던져야 하는지가 고민이라면 고민. 나는 어떤 의도를 가진 창작자로서 이번에 도달해본 것과 그러지 못하여 의문으로 남겨진 것 사이에 놓인 사람이기도 하고,,,,,,,,,,,,,,,,,,,,,,,,,,,,,,,,,,,,,,,,,한편으로는 이 시대 공연 예술을 둘러싼 각종 시사점들을 실감나게 통과하며 여러 가지 현상을 발견하고 있는 사람이기도 하다. 많은 공연예술인 친구들로부터 여러 가지 시행착오의 이야기들이 오갔다. 하지만 분명한 것 중 하나는, 이러한 경험들이 그동안 공연을 가능케 했던 많은 요소들을 다시 환기하고 돌아보게 한다는 것이다. 조명이 들어온 무대 위와 객석 뿐 아니라, 한창 강조되고 있는 다른 매체의 문법과 미학에 대한 이해 뿐 아니라, 극장의 장막 뒤, 공연이 무대에 발붙일 수 있기 위해 수행되었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무엇이었는지도 말이다.
평소에 피로가 오는 부위를 반영한 작년 구매 물품ㅋㅋ 인공 눈물과 안약, 경추 베개, 미세모 칫솔, 시린이 케어 치약. 요새는 눈이 더 나빠져서 큰일이다ㅠ
온라인 공연을 하면서 화면을 매개로 한, 혹은 화면 안에 있는 중첩된 공간들의 다양한 차원을 느낄 수 있었는데, 그 중에서도 해외에 계신 관객 한분과의 라이브 퍼포먼스 시간이 기억에 남는다. 사전에 관객과 주고받은 움직임 스코어를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공연이었다.
‘우리 사이의 거리를 어떻게 잴 수 있을까요?’
‘공기가 멈추더니 불현듯 숨결의 색깔을 알아차렸다.’
네모난 화면 속 네모난 창의 네모난 분할화면 속의 나는, 네모난 스마트 폰을 한 손에 들고 다른 손으로는 빨간 털장갑을 들고, 폰 속에 있는 화면에 대고 말한다. ‘이것을 oo님이라고 생각하고 여행을 떠날거예요.’. 네모난 면들의 층층을 타고 컴퓨터 앞에 있는 몸과 밖에서 움직이거나 구경하는 몸들과 스마트 폰 뒤에 있는 몸 사이에 온기라는 것이 발생하였다면, 그것은 공기를 통해 전달되는 성격의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아마도 주어진 시청각적 정보를 단서삼아 그 곳에서 누군가를 향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에 대한 상상력으로 만들어지는 온기일 것이다.................................역시나 분명한 것 중 하나는 이러한 경험들이 그동안 소통을 가능하게 했던 여러 요소들도 돌아보게 만든다는 점이다. 나의 경우 숱한 온라인 회의를 거치다보니 직접 사람이 눈 앞에 있을 때 시간의 흐름을 타는 손의 자취가 큰 역할을 한다는 것이 많이 생각이 났다. 물론 컴퓨터 앞에서도, 조금 다른 방식으로 손의 안무는 존재한다. 그 작은 움직임이 화면 속 세계를 움직이고, 나아가 화면 밖 다른 공간들도 변화시키고 있음을 상기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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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치를 하다가 뒤늦게 알게 된 비대면으로 함께 공부할 수 있는 유튜브 컨텐츠. 뭔가 신기했다. 그러고보니 나는 공부를 어떻게 했었더라..? 사람들 많이 모인 고요한 독서실 같은 데서는 집중 못하는 스타일이었다. 시끄러운 곳이 편했음.ㅋ
공연이 끝날 즈음에는 ai 챗봇이 논란이 되고 있었고 이를 보도한 기사들에는 ‘거울’이라는 표현이 적지 않게 등장한다. 화면의 안과 밖은 분리되어있지만 서로를 변화시키는 데이터의 안무가 거울 속 세계처럼 아득하다. 사실 몸과 몸이 만날 때 피부 속에서 자동으로 서로를 향해 열려 있는 거울신경세포의 감각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할지도 모른다. 한 친구는 문득, 우리가 마스크를 영원히 벗을 수 없게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마스크를 쓴 사람의 앞 뒤로 얼굴 표면 대신 네모난 거울들이 서로를 무한 반사하고 있는 광경 안에서도 우리는 근막처럼 이어진 연결성을 한동안 상상하고 있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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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고 마감 때는 역시 덕질이지...화면 밖에 있는 나를 아주 무지막지하게 안무하시네
기르고 있는 식물들- 박쥐란, 물배추와 개구리밥, 그리고 이름을 까먹은 다육식물. 겨울이 무사히 지나가길 기다리고 있다.서로 다른 두 세계 사이에 위치한 이 표면장력을 감상하고 있자니, 문득 면과 막의 뒤편에 있는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된다. 그러고 보면, 공연예술인들이 그 어느 때보다도 (화)면 뒤에 있을 또 다른 세계를 상상할 수밖에 없는 시기라고도 할 수 있겠다. 작년 한해 많은 공연들이 온라인 전환되었고, 관객은 모니터 뒤, 공연을 준비하는 사람들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 ‘한 칸에 한 명씩’ 있게 되었다. 나의 경우는 최근에 마친 ‘미니어처 공간극장’의 다섯 번째 공연이 그에 해당했다.
그러다 보니 요즘의 안부는 현재 마무리 단계에 있는 이 작업과 연결이 되지 않을 수 없다. 현재 나는 이 작업의 결과와 과정에 대해, 객관적인 언어로 정리하고 공유해보자는 과제를 스스로에게 내린 상태이다. 그 공유에 있어서 나 자신을 어느 위치에 두고 어떤 질문을 던져야 하는지가 고민이라면 고민. 나는 어떤 의도를 가진 창작자로서 이번에 도달해본 것과 그러지 못하여 의문으로 남겨진 것 사이에 놓인 사람이기도 하고,,,,,,,,,,,,,,,,,,,,,,,,,,,,,,,,,,,,,,,,,한편으로는 이 시대 공연 예술을 둘러싼 각종 시사점들을 실감나게 통과하며 여러 가지 현상을 발견하고 있는 사람이기도 하다. 많은 공연예술인 친구들로부터 여러 가지 시행착오의 이야기들이 오갔다. 하지만 분명한 것 중 하나는, 이러한 경험들이 그동안 공연을 가능케 했던 많은 요소들을 다시 환기하고 돌아보게 한다는 것이다. 조명이 들어온 무대 위와 객석 뿐 아니라, 한창 강조되고 있는 다른 매체의 문법과 미학에 대한 이해 뿐 아니라, 극장의 장막 뒤, 공연이 무대에 발붙일 수 있기 위해 수행되었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무엇이었는지도 말이다.
평소에 피로가 오는 부위를 반영한 작년 구매 물품ㅋㅋ 인공 눈물과 안약, 경추 베개, 미세모 칫솔, 시린이 케어 치약. 요새는 눈이 더 나빠져서 큰일이다ㅠ 온라인 공연을 하면서 화면을 매개로 한, 혹은 화면 안에 있는 중첩된 공간들의 다양한 차원을 느낄 수 있었는데, 그 중에서도 해외에 계신 관객 한분과의 라이브 퍼포먼스 시간이 기억에 남는다. 사전에 관객과 주고받은 움직임 스코어를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공연이었다.
‘우리 사이의 거리를 어떻게 잴 수 있을까요?’
‘공기가 멈추더니 불현듯 숨결의 색깔을 알아차렸다.’
네모난 화면 속 네모난 창의 네모난 분할화면 속의 나는, 네모난 스마트 폰을 한 손에 들고 다른 손으로는 빨간 털장갑을 들고, 폰 속에 있는 화면에 대고 말한다. ‘이것을 oo님이라고 생각하고 여행을 떠날거예요.’. 네모난 면들의 층층을 타고 컴퓨터 앞에 있는 몸과 밖에서 움직이거나 구경하는 몸들과 스마트 폰 뒤에 있는 몸 사이에 온기라는 것이 발생하였다면, 그것은 공기를 통해 전달되는 성격의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아마도 주어진 시청각적 정보를 단서삼아 그 곳에서 누군가를 향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에 대한 상상력으로 만들어지는 온기일 것이다.................................역시나 분명한 것 중 하나는 이러한 경험들이 그동안 소통을 가능하게 했던 여러 요소들도 돌아보게 만든다는 점이다. 나의 경우 숱한 온라인 회의를 거치다보니 직접 사람이 눈 앞에 있을 때 시간의 흐름을 타는 손의 자취가 큰 역할을 한다는 것이 많이 생각이 났다. 물론 컴퓨터 앞에서도, 조금 다른 방식으로 손의 안무는 존재한다. 그 작은 움직임이 화면 속 세계를 움직이고, 나아가 화면 밖 다른 공간들도 변화시키고 있음을 상기해볼 수 있다.

서치를 하다가 뒤늦게 알게 된 비대면으로 함께 공부할 수 있는 유튜브 컨텐츠. 뭔가 신기했다. 그러고보니 나는 공부를 어떻게 했었더라..? 사람들 많이 모인 고요한 독서실 같은 데서는 집중 못하는 스타일이었다. 시끄러운 곳이 편했음.ㅋ
공연이 끝날 즈음에는 ai 챗봇이 논란이 되고 있었고 이를 보도한 기사들에는 ‘거울’이라는 표현이 적지 않게 등장한다. 화면의 안과 밖은 분리되어있지만 서로를 변화시키는 데이터의 안무가 거울 속 세계처럼 아득하다. 사실 몸과 몸이 만날 때 피부 속에서 자동으로 서로를 향해 열려 있는 거울신경세포의 감각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할지도 모른다. 한 친구는 문득, 우리가 마스크를 영원히 벗을 수 없게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마스크를 쓴 사람의 앞 뒤로 얼굴 표면 대신 네모난 거울들이 서로를 무한 반사하고 있는 광경 안에서도 우리는 근막처럼 이어진 연결성을 한동안 상상하고 있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2021. 01.26 허윤경

원고 마감 때는 역시 덕질이지...화면 밖에 있는 나를 아주 무지막지하게 안무하시네
레터프로젝트
레터 프로젝트는 한 달에 한번, 한 명의 작가가 그의 안부와 소식을 글로써 전하는 형식입니다. 이 프로젝트는 어느 때보다 서로의 안부를 묻고, 잘 지내는 것, 그리고 어떻게 이 시기를 통과해 나가고 있는지 서로의 시간으로부터 힘을 얻는 것이 중요한 때라는 판단에서 계획되었습니다. 단지 계획만으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이 작은 프로젝트에 그동안 월례움직임에 여러 방식으로 참여해 주신 분들이 한 조각씩 만들어나가 주실 예정입니다. 안부가 담긴 ‘레터’는 월례움직임 뉴스레터 구독자 분들께 한 달에 한 번씩 이메일로 발송되며, 월례움직임 홈페이지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구독신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