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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례움직임







레터프로젝트
  

레터 프로젝트는 한 달에 한번, 한 명의 작가가 그의 안부와 소식을 글로써 전하는 형식입니다. 이 프로젝트는 어느 때보다 서로의 안부를 묻고, 잘 지내는 것, 그리고 어떻게 이 시기를 통과해 나가고 있는지 서로의 시간으로부터 힘을 얻는 것이 중요한 때라는 판단에서 계획되었습니다. 단지 계획만으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이 작은 프로젝트에 그동안 월례움직임에 여러 방식으로 참여해 주신 분들이 한 조각씩 만들어나가 주셨습니다. 안부가 담긴 편지는 월례움직임 뉴스레터 구독자 분들께 한 달에 한 번씩 이메일로 발송되었으며, 월례움직임 홈페이지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 2021년 한해동안 10명의 작가분들이 편지를 보내주셨습니다.




레터프로젝트, Program 48



10월




제니조



제니조는 전 지구화된 현대사회 속 모호해진 시각예술의 주체성과 작가의 정체성에 관해 질문한다. 회화의 확장된 매체성과 비선형적인 역사적 흐름 안에서 여성 회화작가로서의 다층적 시각과 정체성을 탐구한다.
안녕.

난 지금 잠들기 전에 침대에 누워서 아이폰 메모 앱에 글을 적고 있어. 중세 시대에는 거대한 침대가 마치 무대처럼 방 한가운데 있고 거기서 여럿이 함께 포개 누워 잤대. 폭은 넓지만 길이는 늘이지 않았는데, 추위 때문이기도 했지만, 몸을 완전히 피고 자는 것이 시체 같아서 기피했대. 폭이 너무 넓어서 침대 정리용 막대기를 썼고 누구나 옷을 다 벗고 잠을 잤는데 침대에 들어가면 셔츠를 벗어서 배게 밑에 넣어 두었대. 중세 그림 속 침대에 달린 무겁고 숨 막히게 생긴 커튼들 기억해? 이불 속 검은담비 털, 그 안에 넣어두던 사향이나 용연향, 사프란 향기 주머니 등 집 안의 모든 사치는 침구류에 집중되었대. 방의 구분 없이 그 공간에 침대, 식탁, 등 온갖 가구들이 함께 있고 그곳에서 먹고 자고 목욕하고 일하고 손님도 받았다고 해. 17세기까지만 해도 혼자 있으려고 하는 사람은 수상하거나 미쳤다고 생각했대. 유럽을 휩쓴 페스트를 견뎌내고 르네상스 시대가 돼서야 사생활의 욕망이 생기고 버지니아 울프가 말하는 ‘자신만의 방’이 생기기까지는 수 세기가 걸렸지.
뮐러, 집의 내부, 1924, 파리 유럽 지중해문명 박물관.
공동 거실의 난로 옆에, 세 개의 폐쇄형 침대가 벽을 따라 나란히 설치되어 있다.
난 요즘 시간이 나는 대로 독일 여성 회화작가 유타 코에더 Jutta Koether의 <f.> 라는 짧은 소설을 번역하고 있어. f. 는 여성 female을 상징해.


벨벳 스커트. 나이 든 여자들은 벨벳 스커트를 좋아한다: 젊은 여자들은 겨우 입을까 말까 한다. 벨벳에 관하여: 숨 막힘. 벨벳의 가장 순수한 형태는 낡은 커튼이나 여자의 스커트 또는 허티나카우프호프에서 구매한 신상 벨벳으로 만든 벨벳 담요로 나타나곤 한다. 벨벳 판매장은 백화점에 있는 매장 중 가장 끔찍하다. 여기선 쉽게 상품을 골라 값을 지불하고 나가지 못한다. 물론 말도 편하게 못 한다. 여성 판매원은 자신이 이 벨벳을 어떻게 구매하고, 벽에 고정하고, 그 앞에 말린 꽃 가지를 늘어놓고 사진 촬영을 했는지에 관해 열거했다. 여성적 숨 막힘. 그녀의 지문, 나의 지문, 천-피부의 못생긴 얼룩. 그리고는 벨벳을 들어 올려 소리 없이 재단했다. 밤낮으로 그리고 낮밤으로 쏟아지는 낯선 연설의 울림을 잡아내는 최고의 수법이다. 벨벳이 이 울림을 걷어내고 숨 막힘으로 돌려준다. 거울과는 반대로, 벨벳은 빛을 삼킨다. 목메임. 부드럽게 집어삼킴. 지하 창고에 눕혀 내버려 두 자 벨벳은 곰팡이를 배양한다. 예술의 전 연대기는 벨벳의 산에서-출혈과 고통에 놀라-무너지는 벨벳에 관한 것들로 가득하다. 머리를 걷어찼다. 벨벳으로 감아 모서리가 없는 순수한 감촉. 벨벳으로 만든 스커트는 패턴이 없다. 벨벳으로 만든 담요는 새것임에도 불구하고 (아주 오래된 숨 막히는 낯선 연설) 오래된 윤기가 난다. 대만에서 만든 것임에도 불구하고 새 벨벳은 유럽을 집어삼킬 만큼 매력적이다. 나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마드리드와 프라도산 그리고 색을 입힌 벨벳을 가진 사람들을 찾아다녔다. 이 모든 일들이 있고 난 뒤에도 벨벳에 관련한 일은 멈추지 않았다. 예를 들어 오늘 나는 낸시 시나트라와 리 해젤우드의 “썸 벨벳 모닝” 을 들었다. 포기할 수 없는 일. 내가 자초한 일이다. 나는 이 일의 권리를 주장한다. -번역문 중 발췌
유타 코에더, 2009, <럭스 인테리어 - 핫 로드(푸생을 따라)> 와 퍼포먼스.
유타 코에더 작가가 리나 스펄링스 갤러리에 설치된 자신의 회화 작품 앞에서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이렇듯 여성, 집, 회화에 관해 생각하고 있어. 이것이 고딕 공포 소설을 연상케 하진 않기를. 애초에 집은 자연에서 나왔고 전통적인 자제들이 철제나 시멘트로 바뀌어 온갖 편의성으로 무장한 스마트홈이 되어도 여전히 집은 나의 기호와 표식, 상징들로 이루어진 천-피부-보호막이야.


집은 용감하게 싸우고 있었다. 집은 처음에는 신음을 내고 있었는데, 최고로 심한 바람이 사방에서 동시에 집을 공격했다. 바람은 분명한 증오심을 드러내며 분노로 으르렁댔기 때문에 나는 때때로 공포에 몸을 떨었다. 그러나 집은 버텼다. 폭풍이 시작되었을 때부터 사나운 바람이 지붕을 군데군데 들어냈다. 누군가가 지붕을 뽑아내고, 그 허리를 부러뜨리고, 조각조각 내고, 빨아들이려고 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붕은 등을 둥글게 구부리고 낡은 들보에 단단히 매달렸다. 그러자 다른 바람들이 불어와 땅바닥으로 몰려들면서 벽을 공격했다. 급격한 충격에 온통 휘어졌음에도 집은 유연하게 몸을 굽히고 맹목적으로 저항했다. 아마도 집은 이 섬의 땅에 끊어지지 않는 뿌리로 연결된 것 같았고, 거기로부터 갈대로 만든 얇은 초벽과 마룻바닥은 초자연적인 힘을 얻고 있었다. 바람이 아무리 덧창과 문에 모욕을 퍼부어도, 무시무시한 위협을 가해도, 굴뚝에 나팔 소리를 울려도, 이미 사람과 다를 바 없는 존재가 된 집은 내 몸을 숨겨주었으며 폭풍에 조금도 굴하지 않았다. 집은 어미 늑대처럼 나에게 몸을 바싹 갖다 대었고, 때때로 집의 냄새가 어머니의 냄새처럼 나의 심장까지 내려오는 것을 느꼈다- 앙리 보스코의 말리크루아 중



이번 추수감사절엔 엄마 집에 갈 거야. 팬데믹이 시작되고 벌써 두 번째 해가 저물고 있어. 무엇보다 모두의 안전과 건강을 빌어. 그럼 난 이만 잘게. 안녕.
게르하르트 리히터, 배게, 1965, 마리루이스 하셀 컬렉션. <If you lived here, you’d be home by now> 전시 전경, 2011. 집안 내부처럼 꾸며진 공간에 게르하르트 리히터의 <배게> 회화 작품이 걸려있다.



2021. 10. 26. 제니조



레터프로젝트, Program 47



9월




윤자영



2015년부터 공연을 만들어오고 있다. 주로 극장에서 작업을 해오고 있으며 최근엔 사건의 발생을 만들 수 있는 다른 환경을 상상하기도 한다. 이미지와 상황을 만드는 몸과 텍스트, 장면에 관심이 있다.
2021년 여름의 끝, 하나의 공연을 만들고 식물에게 물을 주며 생각한 것들
<보이지 않는 조건을 만들어주기>

나는 요즘 아침에 일어나면 먼저 함께 살고 있는 식물들에게 다가가고는 해. 사십여 개정도 되는 화분들의 흙에 손가락을 하나하나 넣어보고 밤사이에 일어난 변화들이 있는지 관찰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있어. 최근 여름이 다가올 쯤, 식물들의 자리를 새로 옮겨 주었어. 그늘을 좋아한다고 착각했던 고사리 식물들은 왜인지 그늘에서 성장이 더뎠고, 오히려 반양지에 옮겨준 후 상단에 물리적인 막을 만들어주니 꿈틀꿈틀 새 잎들을 내어주기 시작했어. 더 많은 습도를 필요로 하는 열대식물들은 서로의 수분과 잎 분무의 수분을 같이 공유할 수 있도록 한 곳에 모아 주었고, 햇빛의 방향에 따라 수형이 불균형해진 식물들은 햇빛이 들어오는 정도를 조정해 위치를 변경해주었어. 나는 반사광도 염두에 둘 정도로 식물이 놓이는 조건을 신경 쓰는데, 최근 파종에 성공한 새순과 아기 식물들은 따로 온실에 넣어 적당한 그늘에 놓아두고 주기적인 환기로 뿌리를 성장시켜주고 있는 중이야.

식물들이 잘 자라나기를 스스로 원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생명체로서 살아있는 운동을 확장 시켜주기 위해서는, 즉 식물이 잘 자라나게 해주기 위해서는 여러 조건들이 필요한 것 같아. 먼저 뿌리와 잎의 크기에 따른 흙의 양, 수분을 머금거나 건조를 빠르게 만드는 흙의 종류와 흙 배합 비율, 이 배합도 화분의 크기에 따라 변수가 생기고는 해. 그리고 식물마다 필요한 물의 양, 햇빛의 양, 바람의 양도 공간의 습도와 빛의 정도에 따라 달라져. 우리가 흔히 식물을 구매하며 듣게 되는 ‘며칠에 한번씩 물주기’ 라는 지침은, 사실상 새로운 공간의 유기적 조건에서는 무용지물이 될 확률이 높다고 생각해. 위의 조건들이 잘 맞아 떨어지는 것 같을 때 식물은 건강하고 안정적인 성장 운동을 보여주는데, 나는 안정된 움직임의 새순을 보면, ‘아! 내가 이 보이지 않는 조건들을 잘 조율해주었구나.’ 하는 쾌감이 들고는 해. 나는 이 쾌감의 순간에 이 기분과 유사한 다른 경험이 떠올랐어. 보이지 않는 에너지와 운동, 흐름, 일종의 파동을 만드는 공연을 만들 때 느끼던 기분이.


우리집에서 햇빛과 바람이 제일 잘 드는 자리를 차지한 식물들


회오리 모양으로 뻗어가는 털 달린 줄기

몇 년 전, 문득 세상에 흐르고 있는 파장과 파동, 나와 어떤 것 사이의 리듬, 끊임없이 운동하는 미세한 에너지 자체가 일종의 사랑과 같은 것, 혹은 그 자체로 신과 같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어. 이 생각은 어떤 구체적인 경험에 의해서 생겨났다기보다는 갑자기 어떤 깨달음처럼 찾아왔어. 이런 보이지 않은 관계에 대한 인식이 커진 이후로 공연을 연출한다는 것에 대한 내 관점이 달라졌어. 특히 안무라는 것이 다루는 부분과 ‘작동하는 공연’ 이라는 것에 대한 이해의 방향이 달라지는 계기가 되었어. 몸으로 다른 리듬을 만들어내는 것, 기존의 리듬을 재배열하거나 다른 리듬으로 전환 시키는 것 혹은 기존의 리듬에 틈을 내고 다른 리듬이 비집게 만드는 것 등 연출이라는 것이 보이지 않는 물리적인 흐름과 강도, 단절을 만드는 일이라는 생각이 점점 선명해지는 계기가 되었던 것 같아. 이런 요소들은 추상적인 요소로서 리듬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는 사회가 구성되는 배열, 언어와 힘의 관계, 믿음과 구조가 작동하는 방식을 유기적으로 이해하게끔 연결시켜주는 요소가 되었어. 이런 무형의 에너지와 리듬을 구성하고 변형시키는 것은 공연의 결과물에도 적용되지만, 공연을 바라보고 몸으로 동시에 감응하는 관객의 시간 혹은 관객이 놓여 질 상황에도 적용이 된다는 생각이 들었어. 관객은 어떤 시간에 숨을 크게 쉴 수 없어야 할까, 긴장 되어야 할까, 스스로의 의미나 위치를 인식 해야할까, 옆 관객과의 관계를 감각 해야할까, 몰입 해야할까, 생소한 거리감을 느껴야 할까 등 작업이 하고 싶은 말에 따라 관객이 놓여진 상황에 보이지 않는 연출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점점 하게 된 것 같아.


내 발걸음을 멈추고 사진을 찍게 만든 식물


네트워크라는 이름을 가진 식물의 잎맥

공연을 만드는 일은 불안한 일이라고 생각해. 아무리 시작과 끝이 정확한 시간과 똑같은 구성으로 만들어지더라도 다른 에너지의 개입에 의해서 신기할 정도로 움직이고 생명체처럼 변하니까. 다 만들어놓은 작업이 몸살을 앓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스스로 무언가를 조정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해. 그때마다 나는 조금 더 예민하고 보다 섬세한 조정의 가이드라인을 공연에게 건네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 공연이 올라갈 땐 내 선에서 할 수 있는 것을 다 건네준 후, 내 손을 떠난 구조적인 생명체가 스스로 움직이는 것을 바라봐. 그리고 공연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는 어떤 텍스트나 기록물도 연습한 장면의 발생을 보장해주지 않기 때문에, 만들고 있는 그 순간 눈에 보이고 내가 경험한 것을 그저 믿으며 만들어 나가야하는 것 같아. ‘아, 이것이 발생하는구나!’라는 것을 확인한 경험은 다시 확인 되지도, 되돌아 오지도, 기록 되지도 않기 때문에. 나는 그런 순간의 선택들을 믿고 이것이 에너지를 만들어주기를, 작동해주기를, 움직여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만들어나가고 있어.

얼마전 우주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지구의 압축과 팽창, 물질이 아닌 움직임, 파동이 지나가며 생기는 은하에 관한 이야기들을 듣게 되었어. 이 이야기들을 들으며 끊임없이 움직이고 수축하고 팽창하며 생겨나는 무언가라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어. 보이지 않은 흐름과 운동성을 만드는 불안한 일도 아주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어. 그러다 문득, 몇 년 전 아주 연로한 할아버지 연출의 공연을 보았던 일이 떠올랐는데, 그 연출은 공연의 시간을 한참 동안 아주 느리게 끌고 갔어. 나는 관객석에 앉아서 ‘이 느림을 마지막에 어떻게 해결하려고 하는 걸까?, 빨라지는 방법밖에 없을 것 같은데 설마 정말 빨라질까?, 적당히 빨라져도 이상할 것 같고, 갑자기 빨라져도 이상할 것 같은데, 도대체 어떻게 하려는 거지?’ 라는 생각을 했는데, 그쯤 배우의 움직임은 실제로 빨라졌고 그 빨라짐은 내 예측을 빗나갔어. 생각한대로의 빨라짐이었는데, 그 순간은 아주 섬뜩했고 하나도 이상하지 않은, 아주 아름다운 빨라짐이였어. 나는 그때 이 할아버지 연출은 마술사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어. 빨라짐으로 전환이 일어나는 사이에 정말 능숙한 시간과 상황의 마법을 부린 것이라는 생각에 경외감 비슷한 것을 느꼈어. 나는 그 뒤로 종종 순간에 선택을 충실히 믿어야 하는 공연을 만들며 불안해질 때마다, 그 순간을 떠올리고는 해. 보이지 않는 에너지와 시간, 끊임없이 움직이는 조건들을 말랑말랑하고 서늘하게 만지는 상상을 하며.



2021. 9. 28. 자영


레터프로젝트, Program 46



8월




정언진



디자인을 전공하였지만 어린 시절 배운 춤에 대한 오랜 그리움이 있었다. 성인이 되어 사회에 나간 어느 날 즉흥춤을 만나고 삶을 바라보는 시각이 바뀐 후 춤을 통해 몸과 마음을 공부하면 나의 쓸모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이후 한동안 다원예술작가들의 작업에 참여하여 안무 창작, 퍼포머, 시각 창작물 등을 만드는 사람으로 쓰였다. 현재는 아이를 키우며 ‘삶 그대로의 삶’을 살고 있다. 세상의 원형에 대한 질문들을 하며 과거, 현재, 앞으로의 삶을 잇는 길을 찾고 있다.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서 만나는 인연에게 나이를 떠나 성인이라면 높임말을 쓰는 게 익숙한 터라 처음엔 레터 프로젝트에서 반말을 쓰는 게 불편했어. 그래서 나는 이 편지를 훗날 나에게 쓰는 편지라 생각하며 쓰려고 해. 종종 내게 찾아오는 인터뷰 기회들을 떠올려보면 인터뷰어가 던진 그 질문들을 찾는 과정에서 그 순간 나에 대해 모처럼 깊이 생각하며 갈무리할수 있어 기뻤던 기억이 있거든. 이번엔 내가 스스로 지금의 나를 갈무리하는 시간이라 생각하며 편지글을 시작해볼게.

레터 프로젝트가 작년부터 이어진 공연계의 특수한 상황에서 시작된 것이고, 서로 직접 만날 순 없지만 연결감을 잃지 않기 위해 시작된 것으로 알고 있어. 그러나 나에게 이런 상황의 고립감은 사실 훨씬 더 오래된 일이야. 출산과 육아로 인해서 말이야. 노력과 의지만으로 극복하기 힘들었어. 5년 전엔 나의 경력과 실력으로는 상상도 못할 좋은 기회도 왔었고 용감하게 시도도 해 보고 작업에 대한 피드백도 좋았지만 결국 작업에 대한 책임감에 드는 에너지와 그로 인한 긴장은 오롯이 아이에게 전해졌지. 아이를 혼자 보는 시간이 대부분인 엄마라는 역할을 맡고 있는 상황에서 이 아이가 나로부터 받는 영향이 너무나 크다는 걸 느끼고 나니 나는 내 앞에 놓인 기회를 무리해서 잡을 수 없었어. 그래서 최대한 일상을 해치지 않으며 아이와 함께 성장할 수 있는 공부거리를 찾아 한동안 그 분야에 대해 공부했어.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 또한 오롯이 아이를 이해하지 못하고 나의 지적 욕구가 앞선 선택이 아니었나 생각하게 되는 요즘이야.



서른 가까이 어느 즈음, 나는 로버트 레드포드의 팬인 엄마와 어렸을 때 본 영화 ‘내추럴’ 중 한 대사가 떠올랐어. 10대 때 만나 하룻밤을 함께 한 남자 주인공의 아이를 홀로 낳아 키우는 여자 주인공이 임신 사실도 모른 채 야구선수로서의 성공을 찾아 떠난 남자 주인공과 재회 후 한 이야기야. 옛 연인에게 여자 주인공은 이렇게 말하지 “두 가지의 삶이 있어요. 배우며 사는 삶과 삶 그대로 사는 삶. 그것이 기록을 깨던 깨지 않던…” 아직도 이 대사를 기억하는 걸 보면 공부 잘해 대학가는 게 전부인 줄 알았던 어린 시절에 꽤나 충격을 주었던 것 같아. 그러나 그땐 내 안으로 온전히 받아들이기엔 아직 부딪힘이 있는 말이었어. 하지만 어느 순간, 그냥 알겠더라. 삶 자체는 살아가는 걸로 의미가 있다는걸. 주어진 것의 수용은 얼핏 수동적으로 보이지만 내적으로는 가장 능동적인 삶의 태도가 아닐까 해. 그래서 내게 주어진 삶의 지도를 이해하고 내게 주어진 것을 저항하지 않고 온전히 받아 들여야 그 안에서 나를 위해 할 수 있는 일들을 더 빨리 발견하게 되는 것 같아.

아이러니하게 대면 작업이 어려워진 공연계의 현재 상황과는 반대로 나는 되려 올해 다시 작업을 시작할 수 있는 기회들이 왔어. 연습 과정과 회의 과정을 온라인으로 진행하는 시도들이 늘면서 되려 나 같이 이미 무용계에서 고립된 사람에게까지 기회가 오는 경험을 하고 있어. 그리고 공연 관람도 마찬가지야. 아이 맡길 곳이 없는 나는 평일 저녁시간 공연들은 아예 배제해야 했고 주말마저 남편의 일과가 없어야 공연을 보는 게 가능했기 때문에 몇 번의 공연 취소와 좌절 끝에 점점 공연 보는 시도 자체를 포기하게 되었어. 그래도 꼭 보고 싶은 공연엔 아이를 데리고 함께 갔는데 아직 미취학 어린이가 볼 수 있는 공연은 많지 않아. 내가 아이를 데리고 공연장에 다니는 모습이 잘 모르는 사람들에겐 아이에게 문화생활을 제공해 주고 싶어그런 걸로 오해를 사기도 하는데 사실 아이를 맡길 수 없는 상황에서 내가 공연을 보기 위한 궁여지책이었어. 그런데, 작년부터 시작된 온라인 공연 덕에 나는 반가운 지인들의 공연을 여느 때보다 많이 볼 수 있었지. 나에겐 되려 창작을 함께 했던 동료들과 온라인으로 더 이어져 있음을 느끼는 시간이야. 그들은 빈 객석에서 공연을 하고 있지만 더 많은 사람에게 가닿았음을 느꼈으려나. 그리고 내가 몸을 움직여 본 경험이 있어 화면으로도 움직임에서 몸의 에너지를 어느 정도 읽을 수 있다는 사실도 발견했어. 그건 내가 몸을 움직여 보았기 때문이라는 걸바로 알아챘어. 참 다행이지. 온라인 공연으로도 에너지를 느낄 수 있는 감각이 이미 내 몸에 있어서.





얼마 전 식물 탐구를 함께 하기 시작 한 작가들과 산에서 잠시 각자의 시간을 가졌는데, 우연히 한 버섯에 손을 대었다가 전류가 흐르는 것 같은 느낌을 경험했어. 그러고 나니 다른 식물들이 만들어내는 파장을 느껴보고 싶어 한동안 나뭇잎 하나하나를 만져보며 걸었어. 아쉽게도 온전히 파장을 느끼지는 못했지만, 대신 몇 걸음 걷지 않아 잎이 가진 질감의 다양함을 느꼈어. 손이 벨 것 같은 날카로운 풀, 그 옆에 아기 피부 같은 보드라운 잎들 그리고 매끄럽지만 질기고 강인한 잎, 푸석푸석하고 거칠거칠한 느낌을 주는 잎들… 이 좁은 공간에도 참 여러 성격의 잎들이 같이 어우러져있는데, 사람 사는 곳도 마찬가지겠지. 그리고 잎이 질기고 거칠수록 한해살이풀이나 줄기가 가늘고 생의 주기가 짧은 친구들이었지. 이 질기고 거친 풀잎은 하나 꺾으려 들자면 잎과 이어진 줄기부터 뿌리까지 땅을 잔뜩 움켜쥐고서 꺾으려는 나의 손을 온몸으로 저항하지만, 쉽게 꺾이는 보드라운 잎을 가진 식물의 줄기는 흔들리지 않는 견고하고 기둥같이 튼튼한 중심을 가지고 있었어. 잎 하나 즈음 희생해도 나는 다시 회복할 수 있다는 듯이 말이야. 나의 여리고 어설픈 부분을 마주하는 게 힘들고 그 모습을 스스로 한동안 미워했던 내 모습을 들여다보았어. 하지만 나를 찾아온 어려움들은 느리지만 묵혀서 사유하고 성장시킬 수 있는 힘이 내 안에 있기 때문에 다가온 것이라고 생각하기로 했어. 어려움 앞에 거칠고 날카롭게 싸우기보다 그 순간을 견디고 왜 나에게 이런 시간이 왔는지 이해하려는 방법을 택하는 사람인 나는, 줄기가 튼튼한 그 나무처럼 내게는 잎 하나 뜯어지는 아픔에 흔들리지 않을 수 있는 내면에 힘이 있어서 그런가 보다. 그리고 조금 욕심을 부리자면, 훗날 언젠가 내 줄기가 큰 둥치가 되어 다른 식물이 휘감아도 싹을 틔워도 내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는 그런 존재가 될 수 있기를 꿈꿔보아. 큰 나무의 줄기는 마치 하나의 솟아오른 땅처럼 그 안에 온갖 생명들이 들어와 생태계를 만들듯이 말이야. 세상은 늘 조화를 이루기 위해 다양함을 만들어내고, 내가 지금의 내 모습으로 살 수 있는 것도 나와 반대편에 있는 기질과 의식을 가진 사람들 덕분이지 않을까. 그래서 그분들의 존재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보려고 해. 그렇지만 천적과 공생관계를 구분하여 내가 있어야 할 곳을 찾는 현명한 감각은 더 키우기로. 자연의 모습도 그러하니…



요즘엔 파동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해. 살아 있는 모든 것은 파동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걸 조금씩 이해하고 느끼는 과정에 있어. 그리고 파동 안에서 계속해서 나를 분리하고 제어하고 ‘나’라는 고유의 개별성을 끊임없이 만들어 내는 것은 나의 자아이고. 자아는 나의 감각에서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하지. 감각은 나라는 개체가 세상을 수용하는 문이고. 나의 감각에 따라 세상을 보는 눈과 질은 또 달라지고. 그렇게 고유한 ‘나’라는 개념이 만들어지는 것 같아. 감사히도 나와는 참 다른, 아직 감각이 하나씩 완성되어 가는 중인 아이를 키우며 감각이라는 인식의 창의 중요함을 느끼기 시작하였고, 덕분에 타인이 가진 감각이 얼마나 다른지 생각해 보기도 하고 그에 관해 호기심을 갖게 되었어. 그리고 감각을 넘어 내 주변에 공명하고 있는 파동의 존재를 알고 ‘나’라는 자아 밖에 나와 너는 이어져 있다는 걸 잊지 않으려고 해. 내 안에서 이 세상에서 똑떨어진 외로운 자아가 느껴질 때는 때는 풀벌레 소리를 들으러 집 밖으로 나가. 그 소리를 한참 듣다 보면 내 몸 세포들의 주파수가 세상의 주파수에 맞춰져 세상의 품 안으로 다시 들어갈 수 있는 힘을 얻어. 네가 ‘나’라는 자아 안에서 ‘나’라고 규정한 벽을 조금씩 얇게 만들어 주변의 파동에 공명해 간다면 너와 연결된 많은 사람에게도 변화가 오지 않을까? 그리고 한 친구의 삶의 모습과 말을 통해서 배운 건데, 나 스스로에게 좀 더 친절해지고 다독여주며 목소리를 잘 들어주고 보살피다 보면 그 태도는 타인을 대할 때도 똑같이 반영되어 주변을 환하게 만들어. “당신이 풀잎 하나를 자르면 우주가 흔들린다."라는 중국 속담이 있어. 조금씩 내 안에 작은 부분들까지 세심히 돌보아주는 시도를 하면서 내 주변의 사람들에게도 변화가 오는 것을 조금씩 느끼고 있어. 오늘의 나는 어제의 나보다 조금씩 성장하고 있다는 걸 믿으려 해. 혹시나 지금 감당하기 힘든 어려움을 안고 있다면 언젠가 그전에 내가 알지 못하던 곳으로 날 이끌어주기 위한 길이 준비하고 있을 테니 이 시간을 내 안에서 잘 녹여보아. 그리고 그 터널을 지나 오면 그 순간이 연금술처럼 너에게 값진 시간으로 변해 있을 거야.




2021. 8. 31. 언진




레터프로젝트, Program 45



7월




윤상은


 
프리랜서 안무가이자 무용수. 대표작으로는 <죽는 장면>이 있다. 동료들의 이야기를 전하는 블로그 <떵샤의 모던댄스>를 운영한다. 월례움직임의 최대 수혜자. (떵샤의 모던댄스 https://blog.naver.com/yse216)
안녕, 이 편지를 받게 될 사람들.

평소에 너무 존댓말을 많이 해서 이번 만큼은 반말을 하기로 할게. <떵샤의 모던댄스>라고 내가 운영하는 블로그에서 ‘떵샤에게 온 편지’라는 코너가 있는데, 멀리 사는 후배한테 편지를 부탁했더니 반말로 떡하니 썼더라고. 처음에는 좀 당황했는데, (위계가 심한 무용과를 나와서 말이야. 내가 약간 꼰대같은 면이 있어) 계속 읽으니까 반말이 주는 가벼움, 그리고 반말로 글을 쓴 사람의 당당한 태도에 매료되는 면이 있더라고. 여튼 그래서 나도 반말을 하겠다는 얘기야.

이 편지가 나의 배경을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도 닿을 거라 생각하니 어디서부터 얘기해야 될지 모르겠네. 여튼 그래도 이야기를 해보자면 나는 올 해 너무 힘든 시간을 보냈어. 코로나 때문은 아니고 그냥 내 인생에서 위기를 맞았고, 기로에 서있는 시간이었어. 그리고 그것은 현재 진행형이지. 28살에 무슨 문제로 심리상담을 받았는데, 그 때 상담 선생님이 ‘제가 28살 때는 말입니다. 절벽 끝에 서있는 느낌이었어요.’라고 위로해주셨는데, 나는 28살 때보다 지금이 그렇네. 절벽 끝에 서서 누가 밀면 바로 떨어질 것 같은 느낌.

내가 왜 그런 느낌일까. 돌이켜 보면 하나하나 걸리는 게 많아. 일단 2년 반 동안의 연애가 끝났지. 내 지난 연애를 이야기해 보자면, 정말 로미오와 줄리엣이 따로 없는 세기의 사랑이었어. 실제로 아버지들끼리 사이가 안좋아서 우리의 연애를 알게 되자 노발대발하셨고(내 앞에서는 아니고, 다른 가족들 앞에서 그랬대.) 당장 헤어지라는 말은 차마 못하셨지만 나를 볼 때마다 눈을 마주치지 않고, 서로 쓸데없는 말만 빙빙돌리는 상태가 지속되었지. 그리고 엄마는 ‘꼭 그런 연애를 해야겠니’ 라며 내 사랑을 가벼운 취급을 하셨고. 나는 이 연애가 그 어느 때보다 결핍을 채워주는 연애였는데 말이야. 그런데 결국 끝났어. 집안의 반대로 끝난 건 아니었어. 집안의 반대만이 문제였다면 진짜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같이 죽었겠지. 하지만 다행히 그건 아니었어. 진짜 문제는… 우리는 나이 차이가 좀 났는데, 그래서 그런지 서로 다른 삶의 층위에 서있었달까. 여기서 나의 다른 문제가 시작돼.

30대라는 나이는 뭐랄까. 다들 그런지 모르겠는데 조금의 정체감도 참지 못하는 그런 상태에 있게 되더라고. 20대에 멋모르고 많은 경험을 하고, 열정적으로 살고, 또 조금씩 뭔가 쌓여가는게 느끼지는 시기. 그것을 몰아서 30대의 나는 누구보다 멋질거라 상상하지. 하지만 무참히 짓밟히는 게 현실이랄까. 20대에 여기 예술판에서 피땀눈물 흘리고 살아남은 사람들이 30대에 더욱 치열한 경쟁을 하게 되는 걸 느껴. 이미 검증받은 사람들과의 경쟁이니 더 힘든 상황이지. 같은 지원사업에 넣어서 친한 나의 동료는 붙고 나는 떨어지는 상황을 내가 무슨 보살처럼 견뎌야 하는게, 그리고 그것이 정말 내가 능력이 안되서 라고 생각 되는 순간, 이렇게 뒤쳐지는 나는 더이상 예술을 하면 안되는 건가. 라는 생각까지 도달하지. 평생을 평가받는 위치에 있어와서 그런지 평가에 이리저리 휘둘리는 지금의 내가 됐어. 평가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또 다른 고민이 있겠지만. 그 위치는 언제 누가 되는 걸까. 하여튼 이것이 제도라면, 이 제도 밖으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도 했던 것 같아. 그래서 인생의 기로라는 거야. 내가 깊게 뿌리 박고 있었던 곳에서 더이상 버틸 수 없다는 생각. 그러면 다른 곳으로 탈주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 한때 같이 작업하다가 다른 곳으로 간 언니들을 하나 둘 떠올려봐. 그 언니들은 떠날 때 어떤 느낌이었을까. 어떤 절실함이 그런 결정을 하게 만들었을까.

30대에 호주 이민을 택한 한국 여성의 이야기.전 애인의 추천이었어. 폭풍 공감하면서 단숨에 읽었어. 말그대로 한국이 싫어서.


내 삶에 대한 불안이 극심할 때, 나는 내 연애를 놓아버렸어. 웃기지. 연애라도 붙잡고 있어야 되는게 정상인데. 나는 견딜 수 없더라고. 내가 앞으로 나가지 못하는데, 연애가 다 무슨 소용인가. 아니면 연애야 말로 나를 앞으로 나가게 해줄 어떤 것으로 생각했는데, 그게 안되니까 놓아 버린 거 일 수 도 있겠다. 속물처럼. 지금은 내 삶을 광야로 꺼내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걸 알아. 그건 애인이 할 수 있는 일도 아니고, 이 제도에 벗어나 다른 제도에 편입한다고 해도 거기는 또 다른 문제가 있겠지. 결국 나를 구원할 사람은 나. 당연한 걸 인정하면서도 너무 슬프네. 결국 혼자라는게. 다들 어떻게 그렇게 인생의 동반자를 찾아서 같이 살게 되었어? 부럽기도 하고 물어보고 싶어. 같이이면서 혼자인 삶을 어떻게 균형잡아 가는지.

이러는 와중에 하는 일이 너무 많아서 몸이 고돼. 지금 하는 일들은 지금껏 해왔기 때문에 관성적으로 하는 일이기도 하고, 뭐라도 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하게 된 일들도 겹쳐있지. 2019년부터 해온 성폭력 예방 강사도, 자격증을 굳이 하나 더 따가면서 하고 있고, 작년에 무용수로 뛰던 것도 올 해 또 하고 있고, 떵샤 블로그 포스팅도 끊기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고, 미술관 지킴이 알바도 하고 있고, 필라테스 학원도 다니고 있고…. 다 의미있다고 생각해서 시작한 일이지만 돌아서면 아무 의미가 없게 느껴져. 이것이 내 삶을 보장해주지 않을 거라는 경험에 의한 깊은 회의감 때문에. 이런 시기에는 자체 안식년을 가지고 쉬어야한다던데 나는 그런 시간을 보낸 경험이 없어서 안식년을 어떻게 하는 건지 모르는 것 같아. 안식년. 이렇게 불안한데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그거 어떻게 하는건데. 올 해는 하는 일마다 안될테니까, 그럴 땐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사주보러가서 그랬는데, 결국 말 안듣고 이 고생이다.


미술관 지킴이 알바를 하면서 갇혀서 책을 읽는 호사를 누리고 있어. 트렌스젠더 관음보살이라니 정말 놀라운 책이야. 이 작가의 전작 <여신을 찾아서>도 정말 재밌으니 그것부터 읽어봐.


계속해서 떠나간 사람들에 대한 책을 집어 올리게 돼. 허수경은 시인이지만 독일에서 고고학자로 살았지. ‘사무치다’라는 표현이 많이 나와.


떵샤 인터뷰를 잘하고 싶어서 읽고 있어. 우리나라에는 번역도 안된 많은 작가들을 인터뷰 했어. 작품을 몰라도 술술 읽혀. 인터뷰이와 팽팽한 긴장감이  느껴지지만 결국엔 자기가 원하는 이야기를 끌어내지.

마침 이렇게 위태로운 시기에 편지를 쓰게 되어서 유감이야. 누군가는 이런 하소연에 공감해주겠지만 지금 내가 좀 시니컬한 상태라서 별로 기대 안해. 최근 3년 간 연대, 연대 외쳤지만 이 예술계 안에서 일말의 거리낌 없이 서로 연대한다는게 과연 가능한 일일까 싶거든. 공동의 가치로 장르 불문 많은 사람을 만나왔는데, 결국엔 그들의 욕망을 마주하고, 들켜서는 안될 마음을 나한테 들키고… 하는 일련의 사건들이 있었어. 나 버티고 버텨서 아직 살아 있다고 외치면 멀리 깃발 흔들면서 마주보고 와줄 사람들이 있을까. 그런 상상은 해본다.

이 편지 기획의 취지는 팬데믹이라는 힘든 상황에서 서로의 안부를 묻는 것인데, 반대로 팬데믹 덕분에 이렇게 내 이야기를 털어놓게 되어서 좋네. 사실 블로그 운영하면서 동료 이야기를 전하는 데 충실하다보니까 내 이야기는 막상 할일이 없거든. 말하는 자보다는 듣는 자의 위치에 있겠다고 다짐해왔는데, 그렇게 내 입을 막아 버린지가 오래돼버렸네. 그래서 좀 쌓여있었어. 말은 하고 살아야 하나봐.

그럼 다들 건강하고, 더위 조심해.
빠잉



2021. 7. 27. 상은




레터프로젝트, Program 44



6월




김지연 / 11



저는 소리를 주요 매체로 듣기의 감각과 경험, 생각들을 나누는 작업들을 해왔어요. 음악을 만들때는 피아노와 전자장비, 녹음한 소리들, 허밍을 재료로 쓰는 편입니다. 11이라는 이름으로 2014년부터 몇장의 음반을 냈고, 최근에는 영화음악작업을 해오고 있어요. 엄마 근처에서 이강일씨, 미미, 마틴과 함께 은평구에 삽니다. 
먼쓸리 친구들 안녕, 오랜만.

요즘은 통 메일을 길게 쓰게 되지 않아서 이렇게 메일을 써야지, 하고 쓰는게 조금 어색해. 메일 쓰는걸 즐기는 편인데 지난 겨울에 어깨와 팔에 통증을 느낀 이후로 책상 앞에 오래 앉는 습관을 포함해서 뭐든 오래 붙잡고 고민을 반복하는 습관을 좀 바꿔보고 있어. 강일이가 타이머를 사주었는데, 꼭 시간 맞춰서 작업하고 틈틈이 서서 스트레칭하라고. 잊을 때도 많지만 요긴하게 잘 쓰고 있어. 긴장하거나 호흡이 뜰 때, 자꾸 안좋은 쪽으로 생각이 빠질때. 2분, 3분 맞춰놓고 누워서 호흡하면 전환하는 데 도움이 돼.

이달 중순 이후로는 숨 고르며 천천히 지내는 편이야. 요즘 유투브로 자주 찾아보는 영상들은 스웨덴의 기후활동가인 그레타 툰베리의 연설들, 그리고 산나물과 화전민에 대한 영상이야. 어떻게 연결될지 궁금하지? 음. 나도 찾아가보는 중이야...지난 며칠은 강원도 점봉산과 방태산에 다녀왔어.
1월
대개 나의 하루는 조금 일찍 시작돼. 특히 요즘은 해가 빨리 뜨잖아. 자는 방에 커튼을 안달아서 새벽 5시만 돼도 대낮처럼 훤하더라고. 원래도 꼭 ‘밤’에 하고 싶은 일이 아니라면, 밤 늦게 깨어있는걸 좋아하진 않고 아침에 하는걸 더 좋아해. 뭐든 밤에 하면 쉽게 피로해져. 눈 감으면 바로 잠들고, 눈 뜨면 바로 일어나는 편인데, 아침 일찍 일어나서 세상 제일 중요한 두 가지를 하고나면 9시쯤 되는데, 그 두 가지가 특히 만족스러운 아침엔 이제 하루가 끝나도 좋겠다 생각할 때도 있어. 아침 9시에 하루가 끝난다는건 좀 이상한 소리같지만.

세상 제일 중요한 두 가지는 산책하고 쓰는 거야. 내가 뒷산을 다니게 된게 제주에서 2년 거주하다 엄마 건강이 안좋아지셔서 다시 은평구로 오면서 부터니까 이제 4년 정도 되었네. 그냥 가면 좋아. 비오는 날엔 더 좋지. 나무도 덤불도 흙도 온통 젖고, 비 오기 전후로 보이는 곤충도 달라지고, 냄새도 달라지고, 조금 다른 곳이 되거든. 날씨 영향을 많이 받는 편이야. 뒷산에 가면 이런저런 생각들, 나에 대한 나쁜 생각들을 멈추고 보이고 들리는것에 온전히 몰입하게 돼. 이제 여름이 되어 모기들의 습격으로 한자리에 가만히 서 있기도 어렵지만, 그래도 아침 일찍 나무들, 잎들, 가지들, 열매들, 덤불들, 곤충들, 새들 옆에 있으면 좋아. 처음엔 사진을 주로 찍었는데, 이후엔 노트에 뭔가 쓰기 시작했어. 그게 뭔지 모르고 쓰는데. 스케치하듯 바로바로 그 자리에서 쓰다보니 일기나 시, 짧은 산문 같은 글이 된 것 같아. 작년에 만들어둔 워드프레스 블로그에 나름 열심히 올리고 있어. 나 원래 블로그 좋아함. 블로그 제목을 ‘작은세계’라고 붙였는데, 얼마전에 할머니들이 뒷산을 ‘작은산’이라고 부르시는걸 들었어. 제목이 더욱 마음에 들었지! 쓴 것들, 쓸 것들을 단행본으로 엮는게 꿈이야. 두번째 책도 정해두었는데, 제주에서 듣고 쓰고 남겼던 기록들로 내가 엉성하게 만들었던 웨더리포트 개정판을 내고 싶어. 흐흐. 꿈이 두 가지나 있다. 쓰고 싶다에서, 쓰고 있다로 있을 수 있는건 시쓰는모임 덕분이야. 내가 원래도 모임을 좋아하는데. 같이 쓰게 된 인연에 감사해. 쓰고 나면 쓰기 전과는 다른 상태가 되고, 또 누군가 읽고 내게 감상을 얘기해주는걸 듣고나면 또 뭔가 바껴. 그게 좋아서 계속 쓰게 되는 것 같아. 앞으로도 계속, 직업과 무관하게, 쓰는 사람 하고 싶다..
2월
평일 두 번, 저녁에 펠든 크라이스라는 몸자각운동/치료 수업을 온라인으로 들어. 원래 그룹으로 하는건데 지금은 신청자가 나 혼자라서 1:1 레슨을 받고 있지. 작년 12월부터 어깨가 많이 아프고 불안하고 죄책감에 시달리고 힘들었거든. 총체적 난국. 응, 나도 그랬어! 움직임하는 친구가 권해주어서 듣게 되었는데 이제 4개월 정도 되었네. ‘어깨이완’이라는 수업인데 도움을 많이 받고 있어. 덕분에 바닥에 착 눕는걸 좋아하게 되었고, 몸, 몸짓, 움직임, 행동 같은 신체의 변화에 관심을 가지게 되고, 거기에 나도 영향 받는다는걸 인정하게 되더라. 나는 웬만하면 마음을 먹고 노력하고 의지를 내면 될 거라고 믿는 부류의 사람인데, ‘몸’은 말 없이 단번에 나를 훅 다른데로 옮겨주더라고. 틈틈이 주위 친구들에게도 추천을 많이 했어. 근데 요즘에 수업 시간에 너무 이완이 되는지, 자꾸 졸아…

그리고 겨울에 비폭력대화 연습모임을 했어. 많이 울었어. 음... 누군가를 만나다가, 무언가를 하다가, 어딘가에 있다가 그 연결들이 끊기면 상처가 되잖아. 내가 끊었든 끊겼던간에. 그 단절이, 상처가, 되게 오래 가는구나 싶었어. 상처인줄 모르고 하는 일이 아직도 많아. 호되게 겨울을 보내고, 궁하면 구한다고, 온갖 자가치료에 힘쓰며 마음과 몸을 챙기다보니 긴급히 보고 싶은 친구들 몇몇 얼굴도 떠올라서, 연락할 용기도 나고, 다행히 3월부터는 일도 할 수 있었어. 그치만 솔직히 나는 4월까지 겨울이었던것 같아. 겨울은 힘들었지만, 날이 풀리면서 그립기도 했어. 뭔가 아직 준비가 안됐는데, 사람을 만날 준비도, 같이 작업을 할 준비도. 그렇게 어어어 하며 5월이 되니 그냥 어느 순간 탁 풀려버렸것 같아. 내가 결심해서라기 보다는 날이 따뜻해지고 마감이 다가오고 그러면서. 내게는 5월이 꽤 길었던 것 같아. 계속 계속 작업해도 아직 5월이더라구. 오래 알던 이들과 처음으로 이런저런 이야기도 나누어보고. 낯설기도 했지만, 대부분 좋았어. 그리고 이제 6월 말, 여름방학이 된 것 같다.
3월
막장 좋아해? 막장… 된장과 쌈장 중간...갑자기 먹는 얘기. 나는 한살림 막장을 알게 된 후로 된장찌개도 꼭 막장으로 끓여. 두레 생협의 쇠미역이 진짜 실하고 야생인데, 살짝 데쳐서 막장넣고 싸먹으면 진짜 맛있어. 최근에 몇몇 언니들에게 쇠미역 선물했어. 예전에 제주 살 때 내가 지인에게 한살림에서 판매하는 어간장을 선물했는데, 그 때는 잘 모르는 사이였는데 간장을 선물받으니 너무 재밌었대. 나는 선물하는걸 어려워해. 상대방이 무얼 필요로 하는지 살피는 섬세함이 내게 부족하다고 생각하기도 하고, 또 내가 그걸 해줄 수 없다고 지레 포기할 때가 많은 것 같아. 그런데 올 겨울 힘들때 지인들이 이렇게 저렇게 나를 돌봐주었어. 돌본다는 말이 없이도. 나는 고맙다고 말도 잘 못했지. 돌본다는 거, 나에게는 부족한 능력 같은데...왜인지 자꾸 관심이 생긴다.

최근에 친구들 만나서 소소하게 시간 보내는거 좋았어. 마음에 평화나무가 심어진 사람들. 나도 나랑 자꾸 싸우려 들지 말자. 만나는 사람들에게 평화로운 시간이 되자. 내가 숨이 빨라지면 상대방도 불안해지는데. 내가 편안하고 호흡 찾으면 상대방에게도 평화를 선물할 수 있다. 일단 나의 옆지기한테 부터 그래야지 싶은데. 나는 우울할 때는 자. 개운하게 샤워하고. 뒷산에 가서 잎사귀들 보고. 책상과 피아노가 있는 내 방은 조금 어두운데 낮에도 스탠드를 켜야해. 조명은 어둡게.
5월

6월
날씨에서 기후운동으로 관심을 이어가고 싶다는 생각은 꽤 오래 되었는데, 내게 맞는 구체적인 방법이나 계기를 만나지 못했던것 같아. 그러던 중에 멸종반란이라는 그룹을 알게되어 겨울부터 몇몇 온라인 소모임에 참여하고 있었는데. 어제는 처음으로 오프라인 모임에 갔었어. 어찌나 떨리던지. 그 모임 덕분에 읽게 되는 책들, 생각나는 몇권을 들자면: <시민불복종 쫌 아는 10대>, <탈성장 쫌 아는 10대>, <세상 좀 바꾸고 올게요>, <생명으로 돌아가기>, <15살 자연주의자의 일기>, <미래가 불타고 있다>, <99% 페미니즘>.

우리동네 은평구 구산동에 ‘꿈꾸는 고래'라는 까페가 있어. 요즘 자주 가. 집을 개조한 곳인데 분위기도 차분하고 에그타르트, 비건 샌드위치, 허브 블렌드티, 다 맛있어. 막상 내게 이곳을 알려준 동네 언니와는 한번도 못가봤는데, 그 사이에 그 언니는 제주로 이주를 했어. 가보니 소중한 사람들과 작은 목소리로 느릿느릿 수다하고 싶은 곳이더라구. 꿈고는 은평구 구산동이야. 오면 연락해!


쓰다보니 시시콜콜 길어졌는데. 그래도 못 쓴 얘기도 많아.  

보고싶다. 남은 오후 잘 보내고. 건강히 지내-.




2021.6.29 지연



레터프로젝트, Program 43



5월




황혜란

2021년 현재 궁리소 뛰다의 궁리원으로 화천 예술텃밭에서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2001년 – 2020년 공연창작집단 뛰다 단원)

몸으로 생각하는 배우라는 직업을 가져서 참 다행이라 여기며, 배우 노릇을 할 때가 젤로 신나지만 학교와 예술텃밭 등에서 학생들 가르치기, 워크숍 진행, 드라마투르그, 레지던시 기획과 진행, 글쓰기, 출판편집 일 등도 꽤나 즐기며 하고 있다. 최근엔 예술가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밥상을 차리겠다는 야심을 품고 소소하게 걸음을 떼고 있다.
지난 해부터 코로나가 우리 모두를 힘들게 하고 있으나, 살면서 개인적으로 코로나보다 더 힘든 일들을 겪지 않는 이는 없으리라. 지난 해, 나는 그 시작부터 20여년을 함께 했던 극단을 떠나 보내는 일로 몸과 마음이 수시로 흔들렸다. 코로나는 그저 도울 뿐. (왜 이 시점에서 슬램덩크의 강백호가 떠오르고, 그것을 적고 싶은 충동을 억제하기 어려운 지는 논리적으로 설명하기 어렵지만, 삶에서도 작업에서도 늘 일어나는, 내게는 존재의 비밀 혹은 존재의 성립을 위한 필수조건처럼 느껴지는 일이다.) 어찌어찌 지옥 같은 시간들이 흘러가고 다시 봄은 왔고, 나는 나 자신과 분리하기 어려울 정도로 기나긴 관계를 맺어 온 ‘공연창작집단’을 떠나 ‘궁리소’라는 새롭고도 낡은 장소에 도달했다. 
예술텃밭의 봄
이곳은 지금, 놀랍게도 봄이다. 꽃들이 만발해 있다. 꽃들은 자신의 일부를 미지의 세계로 날려 보내는 중이다. 살아남기 위해 그들은 다른 꽃들, 다른 땅, 다른 하늘과 연결되어야 한다. 나무들은 푸르고, 늠름하고, 아름답고, 끝을 정하지 않고 뻗어가는 중이다. 꽃을 피우기도, 열매를 맺기도, 잎을 무성하게 만들기도 한다. 새들이, 벌들이, 나비들이, 벌레들이, 개구리들이 어디선가 나타나 자신만의 속도로 공간을 가로지르며 궤적을 남긴다. 나는 이 아름답고도 무서운 생명들의 잔치 한가운데서 새삼 깨닫는다. 험한 겨울을 보냈으니 이런 봄이 온 것이라고. 아마도 난생 처음, 깊숙이 봄을 만난다.

궁리소 뛰다에서는 지난 4월부터 <리서치 프로젝트: 즉흥수행법>, <즉흥광대 워크숍>을 진행해 왔고, 6월말부터 5개월간 진행될 <기후변화 레지던시>의 참여자를 모집 중이다. 앞으로도 이런 저런 워크숍과 레지던시 프로그램들이 궁리소 뛰다가 운영하는 화천의 예술텃밭에서 열릴 예정이다. 나는 지난 4월, 6개월 간 진행될 즉흥수행법의 첫 번째 과정인 ‘액션 씨어터’의 워크숍 리더를 맡아 진행했고, 5월 중순에는 ‘즉흥광대 워크숍’ 참여자들을 위해 5박 6일 동안 점심과 저녁을 준비하고, 아침엔 함께 요가하고 명상하고, 저녁엔 즉흥 공연도 했다. 
야심찬 초보 요리사의 샌드위치
대파의 단면들, 동글동글 싱그러운 노래를 부르는 명랑한 단면들
워크숍 진행자로서의 나, 음식을 만드는 나, 요가하는 나, 즉흥공연을 하는 나, 명상하는 나는 경험의 가장 근원적 층위라고 할 수 있는 ‘감각’의 층위에 이르러 하나가 된다. 그리고, 그 감각의 흐름 속에서 다른 모든 것들과 만난다. 너/나는 빠르거나 느리고 강하거나 약하고 크거나 작고 삐죽하거나 둥글고 뜨겁거나 차갑고 딱딱하거나 물렁하며 하얗거나 빨갛고 높거나 낮으며 수직이거나 수평이고 가볍거나 무겁다. 네가 둥글어 내가 둥글어 진다. 혹은 너의 둥긂이 나를 모나게 만들기도 한다. 워크숍을 진행하거나 음식을 만들거나 공연을 하기 위해 내가 해야 할 일은 너의 둥긂과 너의 빠름, 너의 가벼움을 알아차리는 것이다. 너의 형태와 무게와 속도가 너를 가까이 둘러싼 시공을 흔들어 같은 시공 저 쪽에 존재하는 나를 흔들리게 할 것이므로, 나를 열어 젖혀 그 흔들림이 나를 통과하도록 함으로써 너와 함께 존재하게 된다. 그렇게 나는 너를 통해 확장되고 너 역시 나를 통해 확장된다. 그리고 이 확장은 내게 ’존재한다’는 특별한 느낌과 하나다. 나는 이 느낌이 나를 여기까지 데려왔음을 알고 있다.

새삼스럽게, 남의 안부는 왜 묻는가 질문해 본다. 그것도 생판 모르는 타인의 안부를. 그러니까, 나는 지금 완전한 타인인 당신에게 대체 왜 내 안부를 적어 보내려 하는가, 이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질문해 본다. 질문이 일어나는 삶의 자리는 20여년 간의 작업을 통해 발견된 세계로 연결된다. 더할 것도 뺄 것도 없다. 그것이 지금의 내가 서 있는 곳이다.


2021.5.25 황혜란
광대 워크숍 참여자가 그려 준 나

예술텃밭의 봄 




레터프로젝트, Program 42



4월




최인혜

발레로 무용을 시작했으나 존재의 움직임 언어로서의 즉흥춤을 사랑한다. 무용수로 움직임 창작자로 예술강사로 활동해 왔고 경계와 마이너의 목소리를 사랑한다. 스스로 창작자로 명명하고 느리지만 나의 언어를 찾는 과정에 성실하겠다고 다짐하는 예술인이다
나는 움직임을 창작하고 가르치는 일을 하고 있고, 최근에는 감정과 기분을 전달할 수 있는 작업에 관심을 갖고있어. 발레와 마사그라함 테크닉을 배웠어. 좋아하는 만큼 잘 하지는 못해도.

작년부터 근처 학교 등교시간에 열화상 카메라를 지키는 방역요원으로 알바를 시작했어. 아침 6:30-8:30 근무하고 일당 3만원을 받는데, 이 일이 나에게는 힘든 시간을 지나 올 수 있는 나름의 버팀목이 되어준 것 같아. 최소한의 생계를 가능하게 해 주면서, 하고 싶은 일을 지속하고 또 준비하기 위한 시간도 지켜주는.

코로나로 온 세상의 일상이 정지되면서 나에게도 갑자기 텅 비어버린 시간이 주어졌지. 작년에는 어떻게든 적응하려고 다양한 시도들을 했던 것 같아. 재난과 긴급이라는 단어가 주는 불안이 위기를 느끼게 만든 것 같기도 하고. 집에 있어야 되는구나 싶어서 지하실을 작업실로 사용하기 위해 대대적인 셀프 인테리어를 시작했고, 두 달 가까이 매달리기도 했지. 갑자기 주어진 시간들을 알차게 써야한다는 사명감 같은 것도 있었고. 그때 ‘아티스트웨이’라는 책을 읽으면서 12주 동안 책이 안내하는 일들을 수행하기도 했어. 아직 읽어보지 않은 분들에게 추천하고 싶어. 나는 12주라는 시간을 나를 위한 프로젝트라고 생각하고 책에서 하라는 대로 일단은 다 했어. 그중에서 매일 아침 글을 쓰는 습관을 획득했지. 글을 잘 쓰는데는 별로 의의가 없고, 생각들을 문자로 구체화 시키는 것, 생각의 흐름을 잡아채는 것, 그래서 나에 대해, 나의 마음에 대해 조금 더 깊고 넓게 알 수 있었다는 점이 유익했어.
내 방 창문 앞 감나무. 요즘 가장 많이 보게 되는 풍경이며, 감나무의 변화로 계절의 변화를 만나고 있다.
아침 6시 방역알바 가는 길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일상은 소소하고 반복적인 것들로 채워지고 있는 것 같아. 긴 휴가를 보내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나만의 편안한 상태를 구축해 나가는 것 같기도 하고. 나에게 게으름을 허락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상태를 받아들이고 있지. 불쑥 찾아오는 우울함에 압도될 때 고립감과 외로움, 그리고 불안에 정신이 혼미해 지기도 하지만, 그런 때도 그런데로 흘러가게 둘 정도가 된 거 같아. 흐린 날씨처럼, 짖궂은 날씨처럼 내 일상이 항상 잘 지내는 시간으로만 채워질 수는 없는거라는 걸.

지하실에 작업실을 만들때만해도 내가 그곳에서 멋진 작품 하나는 만들어 내겠거니 했다. 뉘앙스로 눈치 챘겠지만 응. 아니야. 내가 의존적인 인간이라는 사실을 확인하는 기회였지. 혼자서 내적동기만으로 자발적으로는 잘 안 움직이더라고 내가. 그나마 요즘은 매일 스트레칭은 하고있어. 모두 그런건지 나만 그런건지 나이가 들어서 그런건지 하루하루 몸의 경직을 경험하고 있어서 나름의 위기의식 같은걸 갖게 되었거든. 언제부턴가 마그네슘을 매일 챙겨 먹는 것과 같지. 그러고보니 얼마전에 루테인도 구입했어. 매주 참여하는 책모임도, 이런저런 워크숍들도 줌으로 진행되고 있고, 영상이나 영화를 보는 횟수도 늘었고, 그래서인지 눈이….
벽도 바닥도 모두 내 노동의 결과물인 작업실.
이곳에서 보내는 시간과 별개로 얼마나 애정이 가는지는 셀프인테리어 해본 사람만 안다.
작업실 이야기로 다시 돌아가서, ‘혼자서 내적 동기만으로 자발적으로’ 그리고 의식적으로 지속적으로 몸을 훈련하고 움직임 언어를 찾아가겠다는 목표에는 아직 진심이야. 테크닉을 배우고 누군가의 지시와 디렉션으로 움직여온 시간이 많아서 그런지 내 일상의 태도들도 어딘가 수동적인 것 같고, 내 생각이나 기분을 표현할때 나도 모르게 눈치를 살피고 있더라고. 앞으로는 작업을 하든 무엇이 되었든 남들의 흥미와 관심보다, 내가 하고 싶은걸 조금씩 해내버리도록 스스로를 응원하기로 했어. 생각보다 용기와 인내가 필요해. 결과가 없을 수 있다는, 누구나 할 수 있는 걸 나까지 했다는 평범성에 대한 두려움, 막막한 시작이 계속 막막할 것에 대한 막막함 같은것들을 노려봐야 하거든. 그리고 느리게 성장하는, 잘 변하지 않는 나의 어리숙한 습관들을 지켜봐야하고. 아직도 미숙하고 혼자서 뭘 잘 해내지 못하는 나라서 외면하고 싶었는데, 그렇기 때문에 더 잘 돌봐주고 세심하게 보살펴주는 방향으로 살아보는게 좋겠더라고. 혼자 움직임을 찾고 작업에 대해 계속 나의 방식을 찾아보는 과정에 대한 훈련이 나에게 필요한 것과 별개로, 지속적으로 같이 만나서 움직임을 찾는 동료가 필요하다고 생각해. 일상성과 지속성의 중요함을 느끼고 있어서 그런지 공연이 정해지고 나서 서둘러 모여 연습하는 형태 말고 리서치와 창작과정이 일상의 한 부분이 되고 그러는 중에 작업으로 나아가는 형태는 이상일까?

나의 안부는 여기까지고, 다들 어떻게 지내고 있어?



2021.4.27 최인혜






레터프로젝트, Program 41



3월




해미 클레멘세비츠

해미 클레멘세비츠(Rémi Klemensiewicz)의 작업은 설치에서 라이브 퍼포먼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방식을 취하는데, 실험의 중심 재료로서 ‘소리’에 중점을 두고 있다. 단순하고 아날로그적인 재료와 과정을 통해, 시각과 청각 사이의 상관관계와 상호의존성에 관한 개념에 대해 질문하는 작업을 해왔다. 이 과정에서 시각과청각을 연결하는 도구로서 언어나 음악 기호 등의 시스템이 종종 사용된다. 그는 프랑스 마르세유에서 태어나 예술을 전공했다. 현재 서울에 거주하면서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2020년 3월 1일에 프랑스로 갔다. 아직까지 프랑스에 있으니 1년 (+1달) 전 부터 프랑스에 와 있는 것이다. 원래 계획은 1달 동안 프랑스에 있다가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하지만 아직까지 프랑스에 있다. 나는 거의 8 년 전부터 한국에 사는데 8년 동안 비자에 관한 문제가 자주 생겼다. 작년 초 부터 더 많은 문제들이 생겼다. 그래서 2020년 3월 1일에 프랑스로 갔다. 한 국 못 가고 계속 프랑스에 있는 것의 장점은 가족과 친구들을 만날 수 있는 것이다. 단점은 계속 이랬다 저랬다 하는 ‘락다운’과 6시 이후로 ‘야간 통행 금지’ 때문에 가족과 친구들을 많이 만날 수 없는 것이다. 프랑스로 도착했을 때, 아! 다음달이면 한국 갈 수 있겠다는 생각을 7월 쯤까지 했다. 7월 이후로 는, 아! 이 생각 그만 해야 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한국 집 비우 고 이사 업체를 불러서 짐을 뺐다. 이제는 한국 집 없는 관광객이 되었다. 내 입장에서는 억울하지만 잘 생각해 보니 어차피 이런 상황을 바꿀 수 있는 정 당성이 없다. 지난 1년 동안 아주 감사했던 게 계속 작업을 할 수가 있었던 것 이다. 한국에서 전시 여러 번 하고 재미 있는 프로젝트들 에도 참여하게 되었 다. “1년 동안 프랑스에 있으면서 작업을 할 거다”, 처음부터 이렇게 알았으면 좋았을텐데 문제는 한국에 곧 갈 수 있겠다는 생각 하면서 지냈다는 것이다. 항상 “무조건 봄이 되면 가야 한다”, 그 다음에는 “무조건 여름이 되면 가야 한다”, “무조건 가을이 되면 가야 한다”, “무조건 겨울이 되면 가야 한다”. 이 제 한 바퀴 돌아서 지금 “봄이 되면 갈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시기 되었다. 1 년 동안 ‘무조건’ 이라는 말을 좀 더 상대적인 뜻으로 인식하게 됐다. 최근에 실내에서 마스크 쓰는거 지겨워졌다. 실외에서 쓰는것이 한국에 살면서 너무 나 익숙한 일이지만 실내에서는 뭔가 느낌이 다르다. 다 그렇게 느끼겠지만 사람들이 대부분 타협을 잘 하는 것 같다. 한국 친구들한테 프랑스가 뉴스에 몇 번 나왔다는 소식을 들었다. 뉴스에 나온 이유는 프랑스에서 코로나 너무 심하고, 6월 21일에 (fête de la musique) 사람들이 아무렇지 않게 마스크 없이 파티를 했다는 내용이었다. 그 얘기 듣고, 아! 아직 시간 좀 걸리겠다는 생각을 하고 한국 집에서 짐을 뺐다.



작업쪽으로는 요즘 음악을 많이 만든다. 최근에 미디 키보드를 사서 새로운 방식으로 음악 작곡하기 시작했다. 내 악기와 많은 음악 장비들이 한국에 있 고 멀리에서 무용 공연이나 연극을 위해 작곡해야 해서 이 미디 키보드가 아 주 좋은 친구 되었다. 반면에 멀리에서 설치 작업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내 가 없으면서 짐 챙기고 이동시키고 공간에 자리 잡고 영상 통화 하면서 설치 진행되는 것이 참 신기한 과정이었다. 전에 얘기했듯이 특권 가지는 느낌이었다. 사운드에 관한 작업 계속 하지만 지난 1년이 가장 조용한 시기였다. 마 르세유 말고 근처 시골에 되도록 가려고 한다. 거기서 집중력이->집중이 잘 되고 동물 소리 빼고는 소음이 없다. 책을 읽기에 좋은 환경이다. 프랑스 남 부에서 날씨 아주 좋다. 1년 동안 치즈 많이 먹어서 살 좀 쪘다. 1년 동안 한국 어를 많이 못 해서 중요한 단어들을 조금씩 까먹는다. 이 글 쓰는 것이 한국 어 연습이기도 하다. 하지만 프랑스에 있으면서 내가 규칙적으로 하는 일은 한국어를 사용해야 하는 일이다 : 한국인한테 불어를 가르치는 것과 프랑스 인한테 한국어를 가르치는 것이다. 모국어 가르치는 것보다는 내가 관심이 있어서 공부한 한국어를 가르치는 것이 훨씬 흥미롭다. 하지만 한국어로 말 하는 것보다 역시 쓰는 것이 어렵다. 나는 문장을 너무 짧게 쓰는 것 같다. 이 글을 읽는 독자의 고통을 내가 느낄 수 없다. ‘제대로 된 한국어 문장 만들 기’ 수업이 있다면 신청할 것이다. 분명히 있겠다고 생각한다.



요즘 언어 정확함의 중요성에 대해 자주 생각하게 된다. 요즘 같은 시기에 (뉴 스 보다가) 조지 오웰의 ‘신어’ 개념에 대해 다시 관심 생긴다. 언어 정확성 없 이 건강한 사회가 존재할 수 없다는 말과, 권력가나 세력가가 사용하는 ‘신어’ 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사고를 못 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는 말이 인상이 깊 다. 역설적인 얘기 같지만, ‘신어’의 성공을 막으려면 새로운 단어를 만들어야 한다는 얘기가 있다. 새로운 단어를 만들거나 원래 있는 단어의 다의성을 되 살려야 한다는 말도 있다. 그렇게 하려면 문학만큼 좋은 도구가 없다는 말이 있다. 가스통 바슐라르 하는 얘기 중에 하나는, 모든 단어들이 집 같다는 말 이 있다. 1층과 다락방과 지하실이 있다. 1층은 단어의 통상적 의미에 해당되 고, 다락방은 과학적/철학적/이성적 의미에 해당되고, 지하실은 불분명한 시 적/비유적/은유적 의미에 해당된다는 말이다. 일상에 언어를 이용하면서 우 리가 1층, 다락방, 지하실로 계속 왔다 갔다 한다는 것 같다. 우리가 이 집 안 에서 어떻게 움직이는지 궁금하다. 하지만 1년 전부터 많은 사람들이 (나 포 함) 이 집 안에서 길을 잃은 것 같다. 길을 잘 찾을 수 있는 비결이 없겠지만 일단 글을 쓰면서 어느 정도 정리가 된다. 이런 자문 하지 않아도 되는 시기 로 돌아왔으면 좋겠다. 이 때까지 힘 냅시다. 곧 만나길 바란다.




2021년 3월 30일 Rémi Klemensiewicz




레터프로젝트, Program 40




2월





유디렉

유기태아트디렉터로 활동하다, 호칭 끝에 선생님을 붙이시는 분들로 인해 유기태아트디렉터선생님은 너무 길다 싶어, 활동명을 유디렉으로 수정한 후 플레이스막 이라는 갤러리를 운영하고 있는 유디렉 이라고 합니다. 
www.placemak.com
로젝트
레터 프로젝트의 정확한 취지를 인지치 못하고 누가 볼까 예민글로 도배해버린 첫 번째 글은 나가리 시켜버렸지. 제 안부가 궁금하실 님들이 보기에 편하기 보단, 내가 내 안부가 어떤지 보기에 적합한 편지를 써보려 해. 결혼 전 민이(아내)에게, 혹시 아이가 생기면 육아는 내가 책임질게 라고 호언장담 했던 세 치 혀를 얻다 팔고 싶은 요즘이야. 나는 민이가 임신 중에 미리 공부를 해보겠다며 육아전문 맘카페를 뒤지며 남의 사생활 멘트를 기웃대는 시기가 있었지. 참고로, 남성 가입이 안 되는 맘카페도 있으니 아내 신상 정보를 잘 외우고 다녀야해. 그중 인상 깊은 이야기 하나는, 엄마들이 아이를 던지고 싶다며 힘들다는 수기 글에 다른 엄마들이 자기도 그렇다며 죄의식과 죄책감을 동반하는 댓글들을 보게 되었어. 문제는 이런 감정의 글들이 꽤 올라온다는 거야. 그땐 아휴 너무 나약한 거 아니야? 내 아기를 던진다고? 힘들어서? 문제 맘들 이구만...이라며 설레발 평가를 나불대었지. 지금의 나는 어떠냐고? 육아를 책임지겠다 했던 개소리가 부끄러울 뿐이지. 이게 남성은 그 책임 자체가 불가능 한 게, 모유를 먹이게 되면 시간의 분할이 엄마 쪽으로 크게 기울 수밖에 없어. 일단, 첫 석 달 정도는 매일 2시간에 한 번 꼴로 모유를 먹이거든. 그냥 엄마 품에 계속 있을 수밖에 없어가 맞아. 게다가, 남편님들이 집 밖으로 일을 나가게 되면 아기를 눈으로 보는 시간도 없구먼 무슨 책임을 져. 그나마, 최수종형이나, 차인표형, 션님 정도 되는 분들이 퇴근하고 돌아와 빨래하고, 청소하고, 설거지하고 하는 거야. 근데, 여기서 나는 뭐 놀다왔나? 집에 드가면 쉬고 싶잖아. 그러니 쌓여있는 설거지거리들을 보면서도 밖에서 일했다는 합리화로 스윽 지나치기 일쑤지. 그럼 나는 어떠냐고? 코로나가 한 몫 한 게, 작년 말부터 올 초까지 일이 줄면서 2개월 정도는 꽉 차게 집에 있었던 적이 있었지. 그때 민이와 솔(아기)이랑 함께 있었거든. 내 잠깐 한마디 하자면, 출근해 유격훈련 다녀 온 거 아니면, 설거지 지나치지 맙시다야. 그나마 솔이는 잠을 잘 잤어. 흔히 통잠이라고 하는데, 신생아 때부터 훈련을 통해 새벽에 깨지 않고 쭈욱 잠을 자게 만드는 거야. 물론 이게 아기 스스로 되는 게 아니야. 부모가 날밤 새가며 길게는 한 달, 적게는 2주를 지지고 볶고 해서 만들어 내는 건데, 여기서 젠장인게 중간에 깨울 수밖에 없어. 밥을 먹여야 하고, 기저귀를 갈아줘야 하거든. 그냥 아침에 밥 먹이면 안 돼? 기저귀 아침에 갈아주면 안 돼? 여기서부터 이제 대화가 어려운 겨~ 엄마의 모유는 가슴에 채워지는 양의 발란스를 맞춰야해. 이걸 못 맞추면 젖몸살이라는...민이 말로는 아이 출산 때만큼 아프다는 고통을 엄마가 받아. 그래서 때마다 모유를 빼 줘야해. 유축이라는 것도 하고 그러는데, 아기는 많은 양의 음식을 쟁여놓을 수 있는 능력이 아직........아휴...됐고. 그럼 기저귀는? 너가 똥오줌 가득한 하체로 같이 잔다고 생각해봐. 됐지? 하여튼 그래서 아무리 통잠교육이 되었다 하더라도 아기를 깨울 수밖에 없어. 그럼 모유먹이고, 기저귀 갈고 잠자리 누이면 바로 잘 거 같애? 물론 아니지. 그래서 잠을 못자. 물론 낮에도 못자. 일상을 치러야 하니깐. 그래서 정신이 나가. 게다가 낮에 아이를 안고 있는 시간이 대부분이라 육체적인 힘을 발끝부터 허리를 지나 목 근육까지 사용해야 해. 기진맥진이지. 근데 휴식할 타이밍을 못 잡아. 그래서 정신이 또 나가. 이걸 2개월 정도 함께 했지. 지금도 민이는 내가 없을 때 홀로 하고 있고, 나는 퇴근 후 들어가 마주하는 설거지를 지나치지 않으려고 노력 중이지. 그래도 솔이의 밤잠은 내가 100% 책임지고 있다구. 이게 운동감 있는 요즘의 내 안부야. 그럼 이제 정신적인 안부를 말해볼게. 아이가 존재하기 십년 전쯤, 자녀가 있는 친누나와 대화를 한 적이 있어. “이런 환경에서 아이를 낳는 것이 옳은 것인지 모르겠어, 환경오염도 심하고, 결여된 인류애에, 자본주의로 인한 사회문제들...이런 것만 물려주는 거 아닌가 모르겠어”, 누나 왈 “너가 키운다고 생각하지 마렴, 아이는 스스로 자라고, 그 아이가 너에게 뭐가 옳은지 알려줄 거야.” 친누나의 답변은 근사한 울림이 있는 답변이었어. 그럼 그냥 둬? 말도 안 되지. 나는 자연인이다가 아니잖아. 고민이 되는 거야. 향후 솔이가 사람을 그릴 때 코와 입은 안 그릴 수도 있는 세상이니 우짜면 좋노. 세상에 맞설 본을 알려줄 애비가 이글을 쓰고 있는 현시점에서 017 2G폰에서 스마트폰으로 넘어 온지 채 한 달도 안 된 구석기인이니 앞으로 솔이를 우짜면 좋노가 시작된 거야. 게다가 부모 모두 미술인들이라 현실적인 부분도 남들보다 쫓기는 입장인거 같구. 벌써부터 주변 지인부모들을 만나면 사교육비를 물어보고 있다니깐...물론 들으면 입이 쩍. 그래서 결론까진 아니지만 사유의 튼튼한 독립성을 키워 주는 게 우리 입장에선 맞겠다 싶어서 방법을 찾고 있어. 지혜롭고 슬기롭게 사유하는 능력을 알려주는 거지. 세 치 혀가 여전한 거지 ㅎㅎ. 여하튼, 물질보단 생각과 감정의 풍요를 더욱 크게 느끼는 자세를 키워주고 싶은 거지. 문제는 내가 그러고 있냐는 거야. 그래서 살펴봤지. 내 야망과 물욕의 욕망들을. 사실 자본과 권력은 나쁜 게 아니잖아. 그걸 모으는 과정과 사용하는 태도가 문제인거지. 근데, 여기서 내가 취하는 태도가 씁쓸한 게, 멀리 볼 필요도 없어. 예를 들어 환경 보호를 한다며 분리수거를 끔찍이 행하는 중이라고 쳐. 와중에 배달음식을 시킬 경우 일회용 포장재의 남용으로 자책하게 되는 부조리가 온다는 거야. 이런 궁핍한 인내력을 확인 할 때 마다 솔이에게 보여주고 싶은 아름다움이 스스로에게 가식이 된다는 거지. 이게 위선이 아니고, 한계가 아니고 모든 게 과정이니 그 안에서 현명해야 함을 알려주고 싶은데, 그게 참 어려워. 아기 교육에 관한 책들을 살피자면 너무 피상적이라 다가오진 않고, 천재를 키운 부모를 다룬 유투브를 찾아보며 ‘쳇’ 이러고 있지. 이래서 나이가 들면 내 부모를 생각 한다는 게 이럴 때도 해당 되는 거 같아. 그럼 나는 나의 부모에게 어찌 교육을 받았을까? 그래서 현재 나는 어떠한가? 부모님 생각하니 바로 눈물 함 쏟아내 주시고~~~ ...살펴보자면, 볼 것도 없지. 사랑을 보여주신 거 같아. 이 편지를 쓰다 깨닫게 되네. 내가 솔이에게 무엇을 함께 해야 하는지 말이야. 여기까지가 요즘 정신적으로 고민하는 내 안부야. 오랜만에 쓰는 편지라 새삼 이 글이 뜻이 깊어지네. 편지도 글이니 마무리가 항상 고민돼. 그래서 이만한 게 없지 라는 마음으로 진심을 다해 마무리 해 볼께. 민이야, 솔이야 그리고 기태야 사랑해.



2021년 2월 23일 유디렉
 
아기의 시선에 혼란을 주어 잠시 부모를 쉬게 만드는 장치

당근마켓의 위력


전쟁터

종량제를 향해 대기중인 1회용 부조리들



레터프로젝트, Program 39



1월




안무가 허윤경 
물에 수생식물을 띄워 키우고 있는데, 넣어준 흙에 알이 섞여 들어간건지, 물 안에 고둥? 물달팽이? 한마리가 살고 있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벽이나 바닥, 잎의 뒷면에 붙어있거나 뿌리를 타고 이동하기도 하는 이 고둥의 가장 신기한 이동경로는 바로 ‘수면’이다. 수면 아래에 거꾸로 붙어서 잎과 잎 사이를 마치 유리바닥인 듯 기어가는 고둥의 배를 내려다보고 있자면, 아, 수면도 면이였지, 하는 생각과 함께 저 면을 경계로 거꾸로 세워져 있는 또다른 세계를 상상하게 된다. 고둥이 수면 밖으로 입을 내밀어 뻐끔뻐끔 공기를 마실 때도 있다. 내가 연못에서 물을 축이고 있는 것을 물 아래에 있는 누군가 올려다본다면 딱 저런 모습이겠지? 그런 의미에서 거울 같은 구도라고 우겨볼 수도 있으려나.

기르고 있는 식물들- 박쥐란, 물배추와 개구리밥, 그리고 이름을 까먹은 다육식물. 겨울이 무사히 지나가길 기다리고 있다.

서로 다른 두 세계 사이에 위치한 이 표면장력을 감상하고 있자니, 문득 면과 막의 뒤편에 있는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된다. 그러고 보면, 공연예술인들이 그 어느 때보다도 (화)면 뒤에 있을 또 다른 세계를 상상할 수밖에 없는 시기라고도 할 수 있겠다. 작년 한해 많은 공연들이 온라인 전환되었고, 관객은 모니터 뒤, 공연을 준비하는 사람들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 ‘한 칸에 한 명씩’ 있게 되었다. 나의 경우는 최근에 마친 ‘미니어처 공간극장’의 다섯 번째 공연이 그에 해당했다.

그러다 보니 요즘의 안부는 현재 마무리 단계에 있는 이 작업과 연결이 되지 않을 수 없다. 현재 나는 이 작업의 결과와 과정에 대해, 객관적인 언어로 정리하고 공유해보자는 과제를 스스로에게 내린 상태이다. 그 공유에 있어서 나 자신을 어느 위치에 두고 어떤 질문을 던져야 하는지가 고민이라면 고민. 나는 어떤 의도를 가진 창작자로서 이번에 도달해본 것과 그러지 못하여 의문으로 남겨진 것 사이에 놓인 사람이기도 하고,,,,,,,,,,,,,,,,,,,,,,,,,,,,,,,,,,,,,,,,,한편으로는 이 시대 공연 예술을 둘러싼 각종 시사점들을 실감나게 통과하며 여러 가지 현상을 발견하고 있는 사람이기도 하다. 많은 공연예술인 친구들로부터 여러 가지 시행착오의 이야기들이 오갔다. 하지만 분명한 것 중 하나는, 이러한 경험들이 그동안 공연을 가능케 했던 많은 요소들을 다시 환기하고 돌아보게 한다는 것이다. 조명이 들어온 무대 위와 객석 뿐 아니라, 한창 강조되고 있는 다른 매체의 문법과 미학에 대한 이해 뿐 아니라, 극장의 장막 뒤, 공연이 무대에 발붙일 수 있기 위해 수행되었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무엇이었는지도 말이다.

평소에 피로가 오는 부위를 반영한 작년 구매 물품ㅋㅋ 인공 눈물과 안약, 경추 베개, 미세모 칫솔, 시린이 케어 치약. 요새는 눈이 더 나빠져서 큰일이다ㅠ  

온라인 공연을 하면서 화면을 매개로 한, 혹은 화면 안에 있는 중첩된 공간들의 다양한 차원을 느낄 수 있었는데, 그 중에서도 해외에 계신 관객 한분과의 라이브 퍼포먼스 시간이 기억에 남는다. 사전에 관객과 주고받은 움직임 스코어를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공연이었다.
  ‘우리 사이의 거리를 어떻게 잴 수 있을까요?’
  ‘공기가 멈추더니 불현듯 숨결의 색깔을 알아차렸다.’
네모난 화면 속 네모난 창의 네모난 분할화면 속의 나는, 네모난 스마트 폰을 한 손에 들고 다른 손으로는 빨간 털장갑을 들고, 폰 속에 있는 화면에 대고 말한다. ‘이것을 oo님이라고 생각하고 여행을 떠날거예요.’. 네모난 면들의 층층을 타고 컴퓨터 앞에 있는 몸과 밖에서 움직이거나 구경하는 몸들과 스마트 폰 뒤에 있는 몸 사이에 온기라는 것이 발생하였다면, 그것은 공기를 통해 전달되는 성격의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아마도 주어진 시청각적 정보를 단서삼아 그 곳에서 누군가를 향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에 대한 상상력으로 만들어지는 온기일 것이다.................................역시나 분명한 것 중 하나는 이러한 경험들이 그동안 소통을 가능하게 했던 여러 요소들도 돌아보게 만든다는 점이다. 나의 경우 숱한 온라인 회의를 거치다보니 직접 사람이 눈 앞에 있을 때 시간의 흐름을 타는 손의 자취가 큰 역할을 한다는 것이 많이 생각이 났다. 물론 컴퓨터 앞에서도, 조금 다른 방식으로 손의 안무는 존재한다. 그 작은 움직임이 화면 속 세계를 움직이고, 나아가 화면 밖 다른 공간들도 변화시키고 있음을 상기해볼 수 있다.


서치를 하다가 뒤늦게 알게 된 비대면으로 함께 공부할 수 있는 유튜브 컨텐츠. 뭔가 신기했다. 그러고보니 나는 공부를 어떻게 했었더라..? 사람들 많이 모인 고요한 독서실 같은 데서는 집중 못하는 스타일이었다. 시끄러운 곳이 편했음.ㅋ   
공연이 끝날 즈음에는 ai 챗봇이 논란이 되고 있었고 이를 보도한 기사들에는 ‘거울’이라는 표현이 적지 않게 등장한다. 화면의 안과 밖은 분리되어있지만 서로를 변화시키는 데이터의 안무가 거울 속 세계처럼 아득하다. 사실 몸과 몸이 만날 때 피부 속에서 자동으로 서로를 향해 열려 있는 거울신경세포의 감각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할지도 모른다. 한 친구는 문득, 우리가 마스크를 영원히 벗을 수 없게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마스크를 쓴 사람의 앞 뒤로 얼굴 표면 대신 네모난 거울들이 서로를 무한 반사하고 있는 광경 안에서도 우리는 근막처럼 이어진 연결성을 한동안 상상하고 있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2021. 01.26 허윤경


원고 마감 때는 역시 덕질이지...화면 밖에 있는 나를 아주 무지막지하게 안무하시네



레터프로젝트 


레터 프로젝트는 한 달에 한번, 한 명의 작가가 그의 안부와 소식을 글로써 전하는 형식입니다. 이 프로젝트는 어느 때보다 서로의 안부를 묻고, 잘 지내는 것, 그리고 어떻게 이 시기를 통과해 나가고 있는지 서로의 시간으로부터 힘을 얻는 것이 중요한 때라는 판단에서 계획되었습니다. 단지 계획만으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이 작은 프로젝트에 그동안 월례움직임에 여러 방식으로 참여해 주신 분들이 한 조각씩 만들어나가 주실 예정입니다. 안부가 담긴 ‘레터’는 월례움직임 뉴스레터 구독자 분들께 한 달에 한 번씩 이메일로 발송되며, 월례움직임 홈페이지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구독신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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